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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경제부 기자
청약통장이 없어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통장 개설을 권유받았던 지인이 있다. 어느 날 창구직원의 끈질긴 구애에 "이 상품이 금리가 제일 세다"는 말을 믿고 월 170만원을 붓기로 했다고 한다. "청약통장은 그런 거 아니야. 더 적게 넣고 오래 붓는 게 좋은거야"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그 지인은 "사회에 나올 대학생들한테 노동법만 가르쳐야 할 게 아니라 청약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청약 대전쟁'이다. 기록적인 집값 상승으로 기존 주택을 사기가 어려우니 청약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델하우스와 평면도를 보지 않고도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3기 신도시 사전청약) 하면, 청약제도 변경 사실을 알리는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가 달린다. 이런 제도 변경으로 어떤 세대·어느 계층의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됐다는 둥, 정부는 제정신이냐는 둥….

신혼부부의 몫을 늘리면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긴 중장년층이 반대하고, 신혼부부 중에 아이가 없는 사람의 몫을 늘리면 아이가 있는 사람이 반대한다. 신혼부부의 몫을 늘리면 혼인기간이 긴 무주택자가 반대하고 소득 기준을 높이면 저소득자가, 소득 기준을 낮게 잡으면 고소득자가 반대한다.

청약제도는 쉬운 듯 어렵다. 실제로 해보니 더 체감이 된다. 청약통장 불입 횟수·가입 기간은 기본값이 되고 자녀 수, 소득, 자산은 변경값이다. 기본값과 변경값의 합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어떤 청약에서든 동일하게 계산되는 '상수'다. 청약의 당락을 결정하는 건 '변수'.

분양하는 물량은 적고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늘 경쟁이 발생한다. 동점자는 추첨을 피할 수 없다. 흡사 복권 당첨과 같은 난수 추첨이 이뤄지고 바로 여기서 청약 성공 여부가 갈린다. 청약은 기본 방정식에 양자역학과 같은 불확정성이 더해진 신기한 공식이다. 이 문제의 정답을 명쾌하게 낼 수 있는 수학자(국민)는 없다. 방정식 풀이는 결국 운에 달렸다. 주거권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