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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공동취재단

대법원이 구속 영장 단계에서부터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67년간 이어졌던 구속 제도가 개편될 지 주목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올해 초 영장 단계에서부터 판사가 피의자를 조건부 석방하는 제도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조건부 석방제도는 말 그대로, 검찰이 구속 영장을 청구한 피의자에 대해 판사가 조건부 석방을 하는 제도다. 피의자에 대한 도주 우려를 판단하기 모호할 때 보증금 납입 등 일정 조건에 따라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는 것인데, 현행법상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

조건부 석방제도가 시행되면 무죄 추정 원칙이라는 형사소송법 취지를 살릴 수 있다.


구속영장 발부, 해외에선?
해외에선 구속 영장 발부에 있어 예외 사항을 두고 있다.

프랑스에선 사법통제명령 제도를 추진한다. 영장 전담 판사는 수사상 필요하거나 공공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판단될 때 사법 통제 명령을 내리며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 피의자를 구속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증금 납입과 서약서 작성 등으로 피의자 구속을 면제한다.

독일에선 피의자구속 유예 제도를 통해 주거지 ,지정 장소 이탈 금지 등 조건에 따라 피의자 구속을 대신한다.

영국에서도 체포장 발부 단계에서부터 보석을 허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판사에게 사건이 회부 돼 구금 여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보석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 경우 판사는 체포장 발부 시보석을 허가할 수 있고, 경찰관은 피의자의 체포 즉시 그 조건에 따라 석방이 가능하다.



법조계 "필요성 공감"
법조계에서도 이미 조건부 석방 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법행정자문회의 재판제도분과위원회가 지난 5월 대한변호사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320명 중 302명(94.4%)는 조건부 석방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한국형사법학회에서도 응답자 15명 중 13명(86.7%)도 필요성에 공감했다.

특히 변협 소속 변호사들은 '무죄 추정 원칙'과 '불구속 수사 실현'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또 ▲구속과 불구속 여부를 가리기 어려울 경우 피의자를 구속한 뒤 조건부 석방을 하면 구속, 불구속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음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주거제한, 피해자 접근금지 등의 제한을 가함으로써 피의자의 도주나 재범 예방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 ▲영장심사의 본안재판화를 방지할 수 있음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번번이 무산된 조건부 석방제, 실현 가능성 우려도.

다만 조건부 석방 제도를 실제 도입하기까지 각종 우려도 여전하다. 이같은 논의가 계속 됐지만 중요도상 후순위로 밀리면서 번번이 무산된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검찰은 유전 무죄를 이유로 조건부 석방제도를 반대했다. 그 뒤 지난 2017년 형사사법발전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됐고 지난 2018년과 2019년엔 정치권에서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잇달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대법원 재판제도분과위는 '구속 영장 단계 조건부석방제도 도입 문제'를 주제로 한 회의에서 "금전적 조건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보석과 같이 금전적 및 비금전적 조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로 인해 조건부 석방 제도가 서민을 위한 제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