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살이 4년 차, 원룸 '방'에 사는 친구가 집 얘기를 하다 "방문을 열면 거실이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친구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교육공무원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스펙을 갖춘 친구에게 사회가 허락한 물리적 면적은 열평 남짓한 방 한 칸이었다.
사기업은 다를까. 이름만 대면 해외에서도 알 법한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도 4년가량을 원룸에서 살다 최근에야 '영끌'해 6억원짜리 아파트에 들어갔다고 한다. 25평짜리 저층부 아파트를 샀다고 말한 친구는 "여기서 신발장만 내 거고 나머진 다 은행거야"라며 웃는다. 친구가 한 평 남짓 신발장을 사는 데 들인 돈은 3천만원이었다.
미래의 주역이라고 불리는 청년 대다수가 따개비처럼 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산다. 희한한 시대다. 이 시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주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머리를 싸매곤 한다.
이름만 들어서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공주택 사업이 즐비하지만 결국 공통점은 한 사람당 열 평 남짓의 공간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주택 혹은 집보다는 방이란 표현이 더 알맞을지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그러했듯 침실과 거실, 손님맞이가 가능한 작은 방과 옷방, 작은 창고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이지 연명을 위한 방은 아니다.
이쯤에서 다시 일제강점기 불길하고 이상한 마을의 모습을 나는 까마귀 눈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이상의 시 마지막 구절을 꺼낸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