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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지금보다 몸무게가 훨씬 더 많이 나갔을 때의 일이다. 코골이와 비염이 심해 인천 연수구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비인후과 원장은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자고 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20여 가지의 성분을 침에 묻혀 등에 찌른 뒤 피부에 나타나는 반응을 살폈다. 원장은 "풀 알레르기가 있다"며 "성묘나 산에 가지 말라"고 했다. "번데기를 먹으면 귀가 간지럽고 재채기한다"고 했더니 "그럼 먹지 마세요"라고 했다.

알레르기 진단이 끝나자 원장은 "코골이 증상이 알레르기보다는 비만 때문"이라는 말을 꺼냈다. 뚱뚱한 사람에게 비만이라는 단어는 심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에 무척 예민하다. 그런데 비만이란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다니. 원장은 "환자분이 뚱뚱해서 코골이가 심해졌다. 수술하면 한 일이년은 편할 수 있지만, 살을 빼지 않으면 완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코골이·비염이 심해 병원에 갔던적이 있다
의사는 '비만이 원인' 살을 빼야 완치 진단


원장을 처음 볼 때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은 상황에서 '비만', '뚱뚱'이란 표현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기도 뚱뚱하면서…"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원장님도 코골이가 심하시겠네요." 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반쯤 올리더니 무슨 얘기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원장님도 뚱뚱하시니 저랑 증상이 같지 않겠어요." 나름대로 생각해 낸 세련된 복수였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풋'하는 소리를 냈다. 무척 공감하는 눈치였다.

원장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환자분하고 나하고 누가 더 뚱뚱하냐"고 물었다. 원장은 간호사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원장은 "일반적으로 코골이는 콧속의 살이 비대해지면서 호흡에 불편을 주기 때문에 특히 수면 중에는 코로 호흡하지 못해 입으로만 호흡하면서 목젖이 늘어나 코골이가 더 심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렌즈가 달린 얇고 기다란 호스를 자기 콧속으로 집어넣었다. 원장은 "잘 보세요. 환자분의 콧속하고 제 콧속을 보면 다르죠. 환자분 콧속이 더 부어있잖아요. 그게 살이 쪄서 그런 거예요." 원장은 신이 나서 "제 콧속은 부어있지 않죠"라고 했다.

"원장님 설명대로라면 뚱뚱한 사람이 코골이가 심하다는 것인데 원장님이 코를 골지 않는다고 하면 뚱뚱하더라도 다 코를 고는 것은 아니다는 얘기가 아니냐."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이었다. 원장의 설명은 길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코골이가 시작되면 몸 안의 산소가 부족해져 뇌에도 영향을 주고, 숙면을 못 하다 보니 낮에는 졸면서 만성피로가 쌓이게 되고…그러다 보면 더 살이 찌고, 코골이는 더 심해지고…." 무슨 얘긴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원장은 당황했다. "그러니까… 코골이가 비만을 일으키고, 살찌면서 코골이가 더 심해지는 것인데…하지만 나는 코를 골지 않는다." 원장은 "나는 코를 골지 않는다"를 여러 번 강조했다. 그 말이 "난 뚱뚱하지 않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결국, "코골이 수술비용이 160만원 정도 든다"는 말과 "집사람과 상의하고 결정하겠다"는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진료실을 나왔다.

"당신도 뚱뚱…"에 중언부언 어이없는 응답
비슷한 처지라면 상처 줄 충고는 안해야겠다


그런 일이 있은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비염이 심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일전에 찾았던 거울 속 나를 보는 듯한 원장의 병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전에 봤던 그 원장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때 그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원장도 놀라는 눈치였다. 되돌아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진료를 받았다.

원장은 "아내가 피부과를 개원했는데 건물 한 층을 같이 임대하기로 해서 얼마 전 이곳으로 병원을 옮겼다"고 했다. 진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콧속에 약물을 뿌려주는 간단한 처치와 처방전을 받고 나왔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의 콧속과 목젖을 두고 감정 대립을 벌였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비인후과 원장의 진료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비만에 시달리는 의사라도 운동과 다이어트에 관해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일을 겪고 난 후 나름 깨달은 바가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충고하지 않기로.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