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병마와 사투를 벌여 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40분께 눈을 감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잇는 과도기를 이끈 노 전 대통령의 삶은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 군사쿠데타를 주도해 성공시켰다.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군사·문민정부 잇는 과도기 주도
남북 유엔 동시가입·올림픽 개최
북방외교·남북관계 개선 등 성과
임기 중반 레임덕 '물태우' 오명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치면서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선 '보통사람 노태우'를 기치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첫 직선제를 통한 13대 대통령으로 당선, 제6공화국의 문을 열었다.
재임 기간에는 안으로 국민통합, 밖으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했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며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임기 중반부터 레임덕에 빠지면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물태우'라는 원치 않는 별명도 얻게 됐다.
퇴임 후에는 불행의 나날이 이어졌다.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천600억여원을 선고받는 등 어두운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뜨는 순간에도 6·29 선언의 주체, 12·12와 5·18의 진실, 3당 합당 과정, 불법 비자금의 용처 등 베일에 가린 현대사의 진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정의종·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