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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현 사회부 기자
청년이 전쟁터에 나서기 전, 마당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판을 벌였다. 전쟁터에 나서는 이의 사기를 북돋우고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의식, '출정식'이다.

내가 출정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수능 전날 열린 '수능 출정식'이다. 출정식의 시작은 책 버리기였다. 학생들은 의식을 치르듯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모아 모조리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책을 찢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책을 버린 후 모인 강당에서는 우리를 위한 응원행사가 펼쳐졌다. 다 같이 '수능 대박' 구호를 외치고 비장하게 응원가를 불렀다. 강당을 나오니 입구부터 교문까지 선생님, 후배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우리가 지나갈 길을 만들고 있었다. 후배들은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선배들의 고득점을 목이 터져라 기원했다. '내일 볼 수능 시험지도 아까 내동댕이친 책들처럼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수능은 증오받는 시험이다.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헌신짝처럼 버림받은 수능 학습서들이야말로 수능이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증오는 엄청난 부담감에서 온다. 몇십 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생각으로부터. 언제부턴가 고등학교에서 해마다 열렸던 수능 출정식은 시험의 무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장함이 은연중에 표출된 의식이기도 하다. 교육이 마치 적군을 이기고 살아 돌아와야 할 전쟁터에 비유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맞는 두 번째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젠 코로나로 출정식은 하지 않겠지만 수능이 학생들에게 주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코로나 감염까지 신경 쓰느라 수험생들은 하루도 맘 편히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오느라 고생 많았던 모든 수험생들이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를, 나아가 수능이 살벌한 전쟁터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이자현 사회부 기자 nature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