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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할 시기가 됐다.", "그린벨트를 푼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주민의 불편을 덜기 위해 합리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30년 가까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묶어 사유재산을 침해한 건 용납할 수 없다." 1997년,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선 후보들의 토론회 과정에서 언급된 개발제한구역 관련 내용들이다. 당시 김대중, 이인제, 이회창 등 주요 정당 후보가 각자의 생각과 대안을 이야기한 건데,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당시의 국민적 불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71년 처음 지정된 개발제한구역은 30년 가까이 지난 그 당시까지 해제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해당 지역에서의 개발행위는 엄격히 제한됐다. 구청 공무원들의 오토바이 순찰 속에서 주민들은 농사에 필요한 작은 건물은커녕, 집이 부서져도 고칠 수 없었다. 작은 닭장조차 철거 대상이었다. 새마을운동 당시 집에 그대로 살아야 했던 이도 있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개발제한구역에 적용되던 '구역불변의 원칙'을 환경평가와 광역도시계획 등을 근거로 한 '구역의 합리적 조정과 활용'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2000년)돼 토지매수청구권 제도 등 주민 재산권 보장과 생활불편 해소, 도시의 계획적인 성장 등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주민들 "정부 쉽게 해제, 곶감 빼먹듯 한다"
지정만 해놓고 관리·역할엔 소홀해선 안돼


그리고 20여년이 지났다. 최근 만난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하는 짧은 생각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싱크대나 샤워시설 같은 농사 과정에서 필요한 시설에 과태료가 부과되는 등 불편이 여전하다", "개발제한구역이 천형(天刑)'이라던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은 이면도로를 기준으로 일반주거지역으로 풀린 곳과 여전히 개발제한구역인 곳간의 토지가격은 4배 정도 차이가 난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생활편익과 복지 증진 등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주민지원사업은 이들에게 먼 얘기일 뿐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등의 발표 뒤 개발제한구역을 비교적 쉽게 해제하는 경우를 보면서, "곶감 빼먹듯 한다", "공로민불(공공이 하면 로맨스, 민간이 하면 불법)이다","정부의 사업 유보지가 되고 있다"고도 했다.

지정과정에서의 비민주성을 차치한다면 도시 확산 방지와 자연환경 보전,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 확보라는 개발제한구역의 목적은 제도 유지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목적의 당위성에 기댄 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만 해놓고 관리와 역할엔 소홀해선 안 될 것이다. "개발제한구역을 국공유화해 개발제한구역답게 해야 한다"는 원로 학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20대 여야후보 "주거문제 해결하겠다" 약속
원주민 마음 어루만져 줄 공약 나올지 궁금


2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한 여야 후보들의 대선 레이스에 속도가 붙으면서, 공약 경쟁도 이어지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요소수 부족부터 코로나19, 이상기후 등 일상을 흔들고 있는 현안에 대한 대안을 담은 공약 속에 주거 공약도 빠지지 않는다. "임기 내 주택 2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 "수도권에만 130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며 주거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역세권 등이 주요 후보지로 거론되지만,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다. 개발제한구역의 토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만큼, 주택정책을 추진할 때 개발제한구역을 손대려는 유혹이 여전할 수 있다.

향후 대선 과정에서 개발제한구역 원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개발제한구역을 개발제한구역답게 하기 위한 공약이 등장할 수 있을까. 후보들에게 개발제한구역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하다. 대선 토론회를 잘 지켜봐야겠다.

/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