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격화에 즈음해서 국내 과학기술정책의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3일 70여개 기업과 힘을 합쳐 드림팀을 구성하는 내용의 '민관 R&D 혁신포럼'을 개최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민간기업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이다.

2019년 기준 한국은 GDP 1천억 달러 대비 특허출원 건수 7천779건으로 세계 1위인데 2위인 중국보다 무려 2천건 이상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과학기술분야 지표(MSTI)'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비 비율은 4.53%로 이스라엘(4.94%)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에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기업 등에 지원하는 R&D예산은 30조원인데 기업의 자체 R&D예산까지 포함하면 총 11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성과는 낙제생 수준이다. 대한변리사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정부출연 연구소(출연연)가 특허청에 등록한 특허의 57.8%가 현실에서 별 소용이 없는 '장롱 특허'이다. 대학의 특허까지 포함하면 특허 활용률은 33.7%로 떨어진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3조원을 낭비한 셈이다. 더 주목되는 점은 특허 활용률이 2018년 33.7%에서 2019년에는 25.8%, 2020년에는 22.1% 등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보유특허는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지만 활용률은 10% 이상 감소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똑같이 혈세 낭비가 지적되지만 전혀 진전이 없다. '한국의 특허제도는 속빈 강정', '고상하게 세금 빼먹기' 등 코리아R&D 패러독스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 전략 없는 정부의 일회성 지원이 부지기수인데다 과도한 실적주의, 관련 공무원들의 비전문성과 무사안일주의, 비효율적인 행정절차, 연구활동을 옥죄는 구태의연한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국내의 양극화 심화 및 미·중 기술패권전쟁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미래성장 국가동력 확충과 경쟁력 제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동안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견인해온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정책이 한계에 직면했다. 이스라엘, 핀란드, 덴마크처럼 수요중심의 정책전환이 시급하다. '민관 R&D혁신포럼'이 이처럼 절실한 과제를 담당해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