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온다. 학교든, 직장이든, 인간관계든 그 과정과 결과가 뻔해 보일 때가 있다. 매사에 관심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해 기자가 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땐 정말 모든 게 궁금했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마음을 따라 몸이 움직이던 시기였다.
머리를 따라 몸이 행동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누군가의 죽음에도 경중을 따졌고,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넘겨짚는 일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취재를 포기한 적도 있다. 호기심 총량이 벌써 '0'이 되었는지, 나는 그렇게 무뎌지고 있었다.
지난달 1일 화성시의 한 폐기물 수집업체에서 일하던 터키 국적 20대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전한 짤막한 기사가 몇 건 노출됐다.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무작정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화성시의 한 동네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카자흐스탄 청년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있는 고인의 형과 연락이 닿았다. 고인의 형과 지인들을 만나며 또 하나의 우주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방부 처리된 고인의 시신은 사고 5일 만에 고국으로 옮겨졌다. 같은 날 그를 추모하는 부고 기사를 썼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말라버린 호기심을 다시 채워야겠다. 무뎌지지 말자. 나를 향한 다짐이다.
/배재흥 기획콘텐츠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