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가 29, 30일 보도한 '통큰기사-불친절한 법원은 무죄일까'는 국민과 담을 쌓은 법원의 구시대적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법원의 폐쇄성과 이기주의는 그동안 언론에서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하지만 부분적인 비판을 한데 모아 놓고 보니 기가 막히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를 법원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법원이 사회적 약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우리 글과 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번역 외국인 사건 처리 예규'는 약식명령이나 즉결심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의 정식재판 청구권을 제한하는 횡포이다. 소송비용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소송구조' 제도 활용에 인색한 것도 문제이다. 장애인 지원과 보호에 소극적인 판결들이 속출한다. 법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법원에 의해 법에서 소외되는 역설이 놀랍다.

스마트폰으로 온갖 행정정보가 제공되는 시대에 법원은 법원문서를 여전히 우편으로 발송한다. 소송 당사자인 국민이 받든 안 받든 '송달 간주'로 판단해 일방적인 판결이 남발되고 있다. 법원 문서를 받지 못한 이유로 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니 시대 역행적이다.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소액사건심판법 때문에 이기고 진 이유를 모르는 소액사건심판들이 즐비하다.

공탁시효 15년이 지나 국고로 귀속된 공탁사건의 공탁금이 연간 1천억원 이상인 것도 문제이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법원의 의무이다. 찾아가는 사람이 없으면 주인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해마다 1천억원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채 국가 곳간을 채우는 셈이다. 끈질긴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학력자들도 쩔쩔매는 난해한 법률 용어는 지금껏 국민들을 법원과 분리시키고 있다.

법원의 권위는 공정한 판결과 차별 없는 사법 서비스 제공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판결은 불신받기 일쑤고 사법 서비스는 차별적이다. 법원 스스로 권위의 본질을 놓치고 퇴행적 문화와 시대 역행적인 관행으로 권위의 외형만 고집하는 형국이다. 법원의 권위가 무너지고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면 민주주의의 보루인 법치가 불가능해진다. 대법원이 경인일보의 지적을 일독하고 국민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법원 문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