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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원 정치부 기자
적당히 하자는 말은 무언가를 할 때 더도 덜도 말고 문제없을 만큼만 하자는 의미다. 하던 대로만 하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리는 이 말은 유독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어색하게 들린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하던 대로 할 수 없고, 모처럼 새로운 것을 하려는데 적당히 하려니 퍽 아쉽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새로 출범한 자치경찰을 대하는 태도는 적당하기 그지없었다. 

 

지난 7월 첫 출범을 앞두고 조직의 컨트롤타워격인 자치경찰위원회를 누구로 채우느냐가 중했다. 경찰학 전문가들은 기존 경찰과 차별화하려면 경찰 출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위원장만큼은 경찰 출신이 아닌 법조·언론·학계 인사가 적절하다는 진심 어린 충고였다. 당시 이 지사는 남부자치경찰위원장에 경찰 출신을 앉혔고 남·북부 위원 14명 중 6명을 경찰 출신으로 임명했다.
 

혁신보다 무난함을 택한 것은 또 있다. 지사직 사퇴 직전인 지난 10월, 도청의 새 식구가 된 자치경찰에 복지포인트 1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 경기도와 파트너가 된 자치경찰 직원들에게 소속감과 자부심을 주겠다는 구상이었으나 복지포인트에 들어간 예산은 자치경찰 자체예산 전체 105억원 중 대부분인 90억원. 주민 밀착형 치안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사실상 없었다. 몇몇 직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무난한 혁신을 택한 결과 주민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경찰 출신들이 운전대를 잡아서일까. 자치경찰위원회는 출범 5개월이 지나도록 이전의 국가경찰 때와 달라진 점을 모르겠다는 도민 지적에 "더 많이 홍보하겠다"고만 한다. 치안 '서비스'가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홍보를 더 하겠다니, 소비자 평가가 안 좋다는데 더 많이 광고하겠다는 우매한 기업 같다. 이 전 지사와 그가 임명한 위원들이 적당히 하는 동안 자치경찰은 우리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이제 와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직원들에게 복지포인트 다 나눠주고 나면 남는 돈은 15억원이 전부다. 자치경찰의 자치는 안으로 굽는 자치였나 보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