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고교에서 참고서 문제를 베껴 기말고사에 출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이 반발하자 재시험을 치렀다. 전에도 방송 교재를 그대로 옮긴 문제가 출제돼 일부 학생은 미리 공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잣대가 되는 내신 성적이 이처럼 허술하게 관리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문제를 베낀 교사들은 문책을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교육계 안팎에선 공교육 시스템이 불신을 받는 이유가 더 늘어나게 됐다는 개탄들을 한다.

인천 선인고는 지난 2학년 독서 과목 2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목 전체 지문 가운데 절반이 EBS가 올해 출판한 참고서에 나온 문제들로 출제됐다. 학부모들이 취합한 독서 과목 2회 고사 시험지를 보면 3개 지문을 활용한 12개 문항 중 EBS 참고서에 실린 지문과 문항, 정답이 모두 일치하는 것이 3개나 됐다. 또 4개 문항은 보기 내용만 일부 수정됐을 뿐 해당 참고서와 거의 흡사한 형태였다.

학부모들은 이 같은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며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처가 화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앞서 지난 10월 치러진 중간고사에서도 6개 지문 중 4개 지문 관련 문항이 2017년과 2019년 EBS가 출시한 참고서에 나온 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일부 학원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선인고 재학 학원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 반발을 사고 있다.

현행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에는 '평가 문항 출제에 있어 시판되는 참고서의 문제를 전재하거나 일부 변경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참고서의 문항을 가져와 출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것이다. 학교 측은 잘못을 인정하고 재시험을 치렀으나 관련 교사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천시교육청도 사실 확인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각급 학교 중간·기말고사가 허술하게 관리돼선 안 된다. 공정한 평가를 통해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학사관리를 정비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얼마 전 대입학력고사에서 출제 오류로 인해 점수발표가 미뤄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무사 자격시험은 국세청 직원들에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공정한 시험을 위한 자정 노력과 실천이 뒤따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