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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 경제부 기자
마트 문만 열어 놓아도 손님이 마감까지 줄을 잇던 시절이 있었다. 남순(가명)씨가 10여년 전, 한 화장품 브랜드의 마트 판촉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그가 일한 곳은 당시 전국 100개가 넘는 영업점을 보유한 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손에 꼽힐 정도로 불티났던 안산의 한 마트. 남순씨는 그 시절을 "일일 알바였음에도 매일 '불려나가' 21~22일 만근을 채우곤 했다"고 회상했다.

실적이 좋은 달엔 다만 몇 푼 안 되는 인센티브도 남순씨에게 들어왔다. 그럴 땐 마치 화장품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된양 소속감 같은 것도 생겼다고 했다.

그러기도 잠시, 어느새 일감이 하루 이틀 줄더니, 주말만 나가게 됐고 심지어 일하던 마트가 사라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날아들게 됐다. 이후 남순씨는 '떠밀리듯' 행사가 있는 인근 마트를 전전했고, 마음 맞던 주위 동료들은 하나둘 생계거리를 찾아 자리를 떠나갔다.

남순씨가 사는 곳에서 차로 1시간 넘게 떨어진 수원의 한 마트에 임시로 터를 잡은 건 지난 8월이다. 이렇다 할 판촉행사가 없어 일을 나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동료들도 사라져 되레 맡은 일만 늘었다던 남순씨는 여전히 용역으로나마 '불러주는' 회사가 고맙다고 했다. "며칠이라도 나와 일할 수 있어서 좋다…그래도 언젠가는 떠난 동료들처럼 내 일자리도 사라지지 않을까."

마트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이에 맞선 투쟁 실화를 담은 영화 '카트'를 처음 봤을 때 현실을 핍진하게 재현했다는 인상이 깊었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꺼내봤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면에 눈이 멈췄다. 계산대를 사수하고자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공성전'을 펼치듯 필사적으로 싸우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계산대를 악다구니를 써서 지켜야 할 자리가 아니라, 기계의 대체쯤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물론 그 역시 철저히 자의적인 결과일 뿐임에도 말이다.

/조수현 경제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