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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팀장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 '실미도'는 영화 한 편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2003년 12월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비겁한 변명입니다"(설경구), "나를 쏘고 가라"(안성기) 등 영화 속 명대사가 유행하면서 다양하게 패러디됐다.

실미도부대는 1968년 4월 북한 침투 작전을 목표로 창설됐다.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아오던 공작원 31명 중 24명은 1971년 8월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서울로 진입하던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공작원 20명, 민간인 6명, 경찰 2명이 숨졌다. 영화의 결말과 달리 살아남은 공작원 4명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생존 24명 억울함 알리려 서울 향하던중
군경과 교전하며 20명 현장서 목숨 잃어


실미도 부대 공작원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었다.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은 1968년 1월 말부터 2월 초 육군·해군·공군 참모총장 등을 긴급 소집해 김일성 거처와 북한 124부대를 습격하는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부대 훈련은 공군이 맡게 됐다. 공군은 공작원 물색 작업에 들어갔다. 공작원 모집책은 무연고자 등 민간인에게 접근해 "장교후보생 대우를 해주겠다", "훈련이 끝나면 직장을 알선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애초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이렇게 실미도에 설치된 특수부대는 공작반, 경비반, 지원반으로 구성됐다. 공작반은 돌격조, 경계조, 폭파조 등으로 세분화됐다.

훈련 과정은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만큼 잔인하고 혹독했다. 외줄 타기 훈련 중 떨어져 다리와 머리를 다치거나 훈련 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물속에서 구타를 당했다. 부대를 이탈한 공작원 2명을 동료 공작원들이 몽둥이로 때려죽이게 지시한 일이 있었고, 부상을 당한 공작원을 방치해 숨지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훈련 도중 총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중앙정보부와 공군은 공작원 살해 행위를 은폐하거나 묵인했다.

생존 공작원 24명이 실미도를 나와 서울로 향한 건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목숨을 잃더라도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군경과의 교전에서 공작원 20명은 숨을 거뒀다. 이 사건으로 4살짜리 여자아이와 20대 회사원, 30대 교사 등 무고한 민간인 18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국방부는 실미도 공작원들을 '무장공비'라고 발표했다가 '공군이 관리하는 특수범들의 난동'이라고 정정했다.


사형수 4명 사체 유족에 인도 않고 매장
진실화해委, 유해 찾는데 큰도움 됐으면


실미도 공작원 합동 봉안식은 2017년 8월 경기도 벽제 군 제7지구 봉안소에서 열렸다. 실미도 공작원의 유해가 46년 만에 봉안된 것이다. 하지만 실미도 사건으로 1972년 3월 사형을 당한 공작원 4명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이들은 초병 살해죄로 기소됐는데,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국방부는 사형 집행 사실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또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임의적으로 매장했다.

지난해 실미도 사건 50주년을 맞아 책 한 권이 나왔다.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안김정애 지음, 모시는사람들 펴냄)이다. 이 책에는 사형수 4명(임성빈·이서천·김병염·김창구)의 유언과 유족(이서천 누이동생)의 증언이 실렸다. 이서천은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다가 내쫓겼다. 피를 뽑아서 빵이라도 사 먹으려고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김일성 사진을 찍어 오면 대위 계급을 주고 아파트 한 채를 주겠다"는 공작원 모집책의 꾐에 넘어갔다. 이서천은 사형장에서 유언 대신 애국가와 만세 삼창을 불렀다. 사형수들의 유언을 보면 국가는 이들을 배신했으나, 이들은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5월 실미도 사건 조사 개시를 의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가 있었으나 유족들이 제기하는 의혹이 명백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억울하게 숨진 실미도 공작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사형수 4명의 유해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