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되기 전엔 친구들의 엄마 전화번호가 다였다. 연락처 찾기에서 검색된 어머니는 코치에게 폭행당한 딸을 둔 피겨 스케이팅 꿈나무 OO이의 엄마,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엄마들, 용균이 엄마 김미숙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대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을 비롯해 다양했다.
휴대전화에서 엄마를 검색한 이유는 '아들을 이어사는 어머니'로 명명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번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 여사 전화번호는 없었다.
배 여사는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1987년 6월9일, 전남 화순군에서 5남매를 키워낸 시골 아주머니였던 배 여사의 역할이 민주투사로 바뀌었다. 이한열 열사는 6·10 대회 출정을 앞두고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에 참여했다가 캠퍼스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한 달 만에 숨졌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숨졌다. 순리에 어긋나는 역리다. 잊지 않겠다는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자식 잃은 어머니가 겪은 역리를 뼛속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한열 열사는 중학교 2학년 때 1980년 광주를 경험했다. 그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름만 들어도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배 여사 입장에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독재자보다 아들의 매서운 눈빛이 더 걱정스러웠을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결국 아들은 학우들을 지키는 소위 '소크(SOC·전위대)' 역할을 맡아 5공화국 독재 정부의 전투경찰과 맞섰다가 숨졌다. 그의 죽음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다. 자유로이 말하고 어디에나 모일 수 있기를 소망하다 앞서서 간 아들의 뒤를 배 여사가 따라갔다.
스마트폰 속 연락처에 남겨진 어머니들은 자식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삶의 동력으로 되돌려 다시는 자기 자신처럼 자식 잃는 엄마가 없는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장되는 전화번호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된다면 더디고 천천히 늘어났으면 한다.
/손성배 기획콘텐츠팀 기자 s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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