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는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120명에 달하는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사안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취재원의 익명성을 위협한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IPI는 지난 25일 낸 성명을 통해 "공수처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러한 대규모의 자료를 수집한 관행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단체는 공수처가 34명의 뉴스 기자를 포함해 직원 70명 이상의 통신 내역을 조회한 TV조선 기자들의 피해 등을 언급하며 "공수처는 고위층 부패를 조사하기로 돼 있지만, 일부 기자들은 취재원을 알아내기 위해 (공수처가) 자신들의 통화 내역에 접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언론인협회 성명서 '깊은 우려'
"수집 중단·조사 촉구" 목청 높여
해당 성명에서 스콧 그리핀 IPI 부국장은 "IPI는 공수처가 민주주의 규범에 위배되는 무분별한 언론인 통화 내역 수집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수사관은 언론인이 연관된 모든 형태의 통신 기록에 접근하기 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며, 모든 경우에 이러한 데이터 수집 대상에게 이를 즉시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PI는 전 세계 120개 국가의 언론인과 미디어 경영인, 편집자들로 구성돼 있는 단체로 지난 1950년 결성됐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다음은 성명서 발표전문.
기자의 통화 기록에 접근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
IPI는 120명이 넘는 기자의 통화 내역에 접근한 공수처의 관행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몇 주 동안 더 많은 한국 기자들은 정부 당국이 자신들의 통화 기록에 접근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일부 외신 언론사를 포함해 22개 언론사의 최소 120명 기자들의 통화 내역에 접근했다. 공수처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러한 대규모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취재원 익명성을 위협한다. 언론인들은 취재원을 보호할 권리를 지켜야 하고, 정부의 감시 없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부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2021년 설립됐다. 현행 한국 법률은 공수처가 논란이 되는 인물에게 알리지 않고 통화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조회)대상이 되는 기자의 수는 아마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공산이 크다. 공수처는 기자의 통화 내역에 접근한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공수처 및 다른 사법기관들은 영장 없이 통신사에 통화 내역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공수처가 통화 시간 및 장소와 같은 세부적인 통화 기록을 조사하고자 할 경우에는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TV조선은 직원의 통화 내역을 조회당한 언론사 가운데 하나이다. 언론사에 따르면, 공수처는 34명의 뉴스 기자를 포함해 70명 이상의 TV조선 직원들의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기자들이 연관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공수처는 더 구체적인 기록에 접근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채현 TV조선 취재기자는 IPI에 "공수처나 다른 수사기관이 원할 때마다 익명의 제보자나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화가 난다"며 "나는 정당한 방식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법원이 어떻게 내 통화 내역에 대한 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가?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나는 수사관들이 왜 내 개인정보를 조회했는지에 대해 공수처가 타당한 설명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기자들은 그들 가족의 통화 기록도 조회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채현 기자는 "공수처가 어머니와 여동생의 통화 기록을 조회했다"며 "그들(가족)은 공수처나 공수처 관련 어떤 사건과도 연관이 없다.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스콧 그리핀(Scott Griffen) IPI 부국장은 "한국에서 공수처가 120명이 넘는 기자의 통화 내역에 접근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행동은 내부고발자 등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하고 국가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언론인의 권리를 명백히 훼손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탐사 저널리즘에 해롭다. 실제로, 공수처가 기자의 통화 내역을 대량 수집하는 것은 부패 또는 다른 불법 행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취재원이 증언하거나 언론에 편안하게 이야기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공수처의 임무가 고위층 부패 척결이라는 점에서 이는 역설적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IPI는 공수처가 민주주의적 규범에 위배되는 무분별한 언론인 통화 내역 수집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공수처는 언론인과 그 가족을 표적으로 삼은데 대해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하며, 이 같은 자료 수집이 승인 및 수행된 이유와 방법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공수처 및 유사 기관의 수사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보호 장치를 구축하도록 가능한 빨리 개정을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수사관은 언론인이 연관된 모든 형태의 통신 기록에 접근하기 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며, 모든 경우에 이러한 데이터 수집 대상에게 이를 즉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공수처는 고위층의 부패를 조사하기로 돼 있지만, 일부 기자들은 취재원을 알아내기 위해 (공수처가) 자신들의 통화 내역에 접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동권 TV조선 취재기자는 "(공수처의 기자 통신 조회는) 특종 기사의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국가정부기관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배후가 누구인지를 찾으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 내역이 조회될 경우 당사자에게 자동으로 알리도록 법이 개정되기를 희망했다.
통화 기록 조회를 당한 또 다른 기자는 김지아 TV조선 경제산업부 기자였다. 김 기자는 법 개정을 촉구하며 "공수처 및 다른 수사기관들은 무분별한 개인 정보 열람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이는 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와 이채현 기자는 취재원이 익명성을 신뢰할 수 없을 경우 한국의 독립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채현 기자는 "공무원과 수시관들이 나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몇 번이나,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통화 기록을 조회했을지 우려된다. 오래 전에 접촉했던 내부고발자나 익명의 제보자에 대해서도 걱정된다. 이번 사건 이후 어느 제보자가 나에게 와서 그들의 정보나 의견을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한국 언론 뿐만 아니라 공수처는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 닛케이신문 등 최소 4개의 외국 언론사 기자의 통화 내력에도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