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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소설가 김애란은 부사라는 품사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부사는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중학생처럼 과장과 허풍, 거짓말 주위를 알찐거린다." '정말', '제일' 따위가 다른 용언 앞에 쓰이는 예를 떠올려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 부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린 이렇게 모자란 부사를 쓰면서 상대방에겐 진심이 닿길 바란다. 보통은 고맙고, 미안한 게 아니라 '무척' 고맙고, '진짜' 미안하다. 진심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요즘은 진심처럼 보이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토론회를 두고 대통령선거 유력 후보들 간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을 감게 된다. 이들은 각자의 진심보다 진심을 내보일 방법과 형식을 따진다. 유권자의 권리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유불리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부사를 사용할지부터 고민하는 어리석은 꼴이다.

설 명절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달 29일에는 (주)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 아래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20m 높이 토사에 깔렸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삼표산업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언제나 그렇듯 '깊이' 사죄드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겠단다. 이들이 입장문에 담은 의지를 진심으로 믿고 싶지만,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삼표산업 포천사업소와 성수공장에선 노동자들이 바위에 깔리거나 덤프트럭에 부딪혀 숨졌다. 당시에도 사측은 깊이 반성하고,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길 원한다. 그런데 내용물은 없고 화려한 포장지만 남았다. 겉치레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만 한다. 진심에서 거짓이 엿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주고 실천으로 뒷받침하면 될 일을 어렵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다. 그래야만 하는 현실에 살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