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중소기업인의 근황을 전해 듣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해당 중소기업인은 건축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업력 20년을 훌쩍 넘긴 업체의 대표였다. 2년 전 제보자로 만나 "납품을 하면 할수록 손해다. 아무리 입찰로 사업에 참여했다지만 계약일과 납품일 사이 수개월 시간 차에 엄청나게 자재 단가가 올랐는데 반영해 주지 않으니 미쳐버릴 지경이다"라는 하소연을 듣게 됐다. 이 기업은 대기업이 시공하는 경기도 내 아파트 건설현장에 자재를 납품했고 계약 당시 대비 평균 30%, 어떤 품목은 50% 넘게 자재 단가가 상승한 것도 있었지만 이를 인정해주지 않아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취재를 통해 사연을 알렸고, 해당 기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내심 대기업과 중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상된 자재 단가 부분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 돌아가게 하는 근간 속뜻 담겨져
업체 59.7% 원가상승분 납품단가 반영 못해
사실 당시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때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일시적일 거라 생각했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촉발된 전 세계적 기업 여건 악화는 원자재가 상승에 더해 물류난이 심화되며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몇년 새 천정부지로 오른 건축자재 가격이 아파트 분양가마저 밀어 올리고 있으니 당시 제보자의 하소연은 상승 변곡점이었던 것이다.
해당 기업에 안타까움이 더했던 것은 기업이 장애인 채용에도 앞장서 와서다. 자재를 재가공해 납품하면서 지역 내 장애인을 대거 채용해 왔는데 이젠 직원들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으니 아쉬움이 컸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올 상반기 중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을 감안해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 오르면 의무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리는 제도로,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발표 전날에도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차기 정부 중소기업 핵심 정책 과제'를 발표하면서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시범운영인 만큼 제한적 형태(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토대로 시범 운영한 뒤 제도 보완)로 시작돼 좀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제도가 좀 더 일찍 시행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소 제조업체 59.7%가 원가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납품단가 미반영 업체비율이 2012년 42.7%에서 2019년 57.6%, 2020년 59.7%로 계속 증가세에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 공약 쏟아지지만 기업은 시간이 생명
차기정부, 中企가 원하는 정책 서둘러줘야
흔히들 '중소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경제가 산다, 지역이 산다 등등 다양한 문구가 합을 이뤄 불려진다. 결국 이 같은 문구들 기저에는 중소기업이 대한민국을 돌아가게 하는 근간이 된다는 속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한 달 뒤면 대통령 선거다. 얼마 전 중기중앙회는 차기 정부가 실현해야 할 어젠다 등을 제시하며, '차기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방향'에 대한 기업인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차기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소기업 정책으로 '최저임금·근로시간 등 노동 규제 유연화'가 40.5%로 가장 높았고, '공정거래 환경 조성'(19.0%), '중소기업 간 협업 활성화'(16.0%), '혁신 창업생태계 조성'(7.7%) 순으로 필요성이 대두됐다.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뭐 하나 허투루 할 것은 없겠지만 한국 경제의 중추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은 시간이 생명이다.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많은 기업의 명운이 갈린다.
/이윤희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