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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컨테이너 숙소 내부. 2022.2.2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가설건축물 신고도 하지 않은 8평 남짓 컨테이너 숙소에 갇힌 외국인 노동자가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불법건축물 숙소를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대책은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22일 소방에 따르면 이날 0시8분께 파주시 조리읍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불이 났다. 불은 20여분 만에 모두 꺼졌지만, 숙소에 있던 인도 국적 A(46)씨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A씨는 3년 전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이 파악한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불이 난 당시 컨테이너 안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은 목격자가 A씨를 구조하고자 문을 개방하려 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문을 여는 데 실패한 목격자는 창문을 통해 A씨를 바깥으로 빼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은 화재를 진압한 뒤 컨테이너 안에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현장에서 숨진 A씨의 시신은 곧바로 경찰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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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을 찾은 A씨 동생의 뒷모습.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2022.2.2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이날 오전 11시께 찾은 화재 현장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타고 남은 옷가지와 가구, 전기난로 등을 통해 겨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A씨의 동생(44)은 "이렇게 큰불이 나 형까지 죽게 만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인도에 형의 아내와 6살 딸이 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A씨가 변을 당한 컨테이너는 회사가 숙소용으로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해당 컨테이너는 파주시에 가설건축물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건축물로, 화재 위험에 기본적으로 취약한 상태였다. 이날 컨테이너 숙소 내부를 직접 확인한 결과 소화기나 화재경보기 같은 화재 예방 시설 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장실 같은 필수 시설을 갖추지 못해 숙소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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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라인이 설치된 컨테이너 외부. 2022.2.22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A씨처럼 외국인 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정식 숙소가 아닌 곳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은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에는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고(故)속헹(31)씨가 난방이 안 되는 열악한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진 일이 있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미신고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후속 대책을 내놨지만, A씨에게 닥친 비극을 막을 만큼의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거주하는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 숙소는 안전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 가설건축물 자체를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고용노동부는 이를 가능하게 열어뒀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회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숙소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조사하고 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