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는 길거리 유세의 일방적 선동과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명색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공식 토론에서 선두를 다투는 여야 후보들은 대통령의 품격과 거리가 먼 언어와 태도로 일관했다. 상대를 몰아세우는 억지 주장과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은 회피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정상국가 수반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경제였지만, 화제는 대장동 범죄 혐의자인 김만배 녹취록을 둘러싼 공방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 등 김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해 언급했다는 녹취록 문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손팻말을 들어보였다. 윤 후보가 대장동 범죄 주역인 김씨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혔고, 김씨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윤 후보가 이 후보를 대장동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해 펼친 공세를 완전히 뒤엎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윤 후보는 곧바로 김씨가 '이재명 게이트'라고 말했다며 녹취록 전부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날 두 후보의 '김만배 녹취록' 공방은 며칠째 방송 등 미디어에서 각 당을 지지하는 패널들 사이에서 지겹도록 결론 없는 설전을 벌였던 주제였다. 유권자들에겐 마치 재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걸 전 방송사가 전국에 생중계한 것이다. 정작 이날의 주제인 경제분야 질문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날카로운 질문에 두 후보는 엉뚱하거나 전문성이 결여된 답변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선관위 주관 토론회는 후보들에게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중도층으로 지지 확장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미 선거 현장에서 소비됐거나 소비 중인 네거티브 공방을 재현해봐야 진영의 결속만 강화할 뿐, 국가운영 비전과 능력을 기대하는 중도 표심의 환멸을 부추길 뿐이다. 유권자가 후보의 능력, 도덕성에 집중할 수 없는 네거티브 공방은 결국 표심의 기준을 정권유지 대 정권교체로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부동층 지지 확장의 기회여야 할 토론회가 선택의 기준을 단순화하는 역설이 누구에게 이익이 될지 몰라도, 황당한 네거티브 공방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앞으로 예정된 두 번의 선관위 주관 대선 후보 토론이 같은 양상으로 반복된다면 두 후보 모두 부동층 설득에 실패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