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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한 장병은 탈출구가 없는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면 불안도가 높아져 아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다른 장병은 업무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리면 팔과 다리가 오그라들고 동공이 풀리는 발작 증세를 보인다.

2010년 3월26일, 폭침으로 가라앉은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의 이야기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그들의 트라우마를 듣고 자신의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 이렇게 적었다.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사건'은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폭침의 원인을 둘러싼 분석과 책임소재 따지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생존 장병 58명의 이야기는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잊혔으므로, 제대로 된 기록조차 있을 리 없다. 살아남은 장병들이 트라우마에 허덕이고 '패잔병'이란 낙인에 고통받는지 알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이야기만 잊힐까. 일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과 동료,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도 많은 경우 우리는 알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김승섭 작가가 천안함 생존 장병 연구에 들어선 계기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였다. 정치권이 참사 이후 사안을 진영논리에 가두는 동안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뒷전으로 밀리고, 잊혔다. 천안함에서 남은 자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10일 새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됐지만 우려가 앞선다. '여가부 폐지' 등의 '한 줄 공약'으로 2030 남성 표심 획득에는 성공한 듯 보이나, 정작 여성들에게 이 메시지는 현실적 위협에 다름 없을 수 있다.

부처의 '쓰임'이 문제라면 대안을 펼쳐놓고 공론장에서 머리를 맞대면 될 사안이다. 대안 없는 '성 평등'은 그저 텅 빈 기표에 불과하다. 피해를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닌, 피해를 인정하고 바로 보는 지도자를 원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