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기침, 발열 증상 있습니다.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사다 주세요."
지난 21일 오후 9시30분 수원시 장안구 자택. 휴대폰 진동이 울리며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익명의 동네 주민이 P앱을 통해 보낸 '심부름' 요청이었다. 약국에 들러 감기약을 사서 집 앞에 두어 달라는 부탁.
요청을 수락하고 나니 누군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마음에 조급함이 생겼다. 별안간 몸이 아픈 이웃을 도와야겠다는 일말의 책임감도 들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가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우선 늦은 저녁에도 문을 여는 수원 남문시장의 한 약국에 들러 감기약을 구매했다. 그 뒤엔 목적지인 원룸 오피스텔로 이동해 약봉지를 문고리에 걸었다. 20여 분만에 완료한 심부름의 대가는 5천원이었다.
대부분 동네 1인가구 배달요청
20여분 만에 완료 대가 '5천원'
P앱은 심부름을 매개로 동네 주민들을 연결해 준다. 코로나19로 어떤 분야든 비대면이 강조되면서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심부름을 부탁하는 앱들이 유행한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출시한 P앱은 불과 8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50만회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심부름을 위해 돈을 내고, 어떤 심부름을 해서 돈을 버는지 궁금해 직접 '심부름꾼'이 되어 봤다. 대부분의 심부름은 물건을 대신 사서 집으로 배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심부름 요청 면면을 보면 국내 전체 가구 중 32%를 차지하는 1인 가구가 코로나19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엿보였다.
'오미크론에 걸렸는데, 병원 전체 전화가 안 된다. 약 배달 좀 해달라', "코로나 확진자라 약 배달 부탁드립니다", "격리라 나갈 수가 없어 장을 대신 봐 주세요" 등 주변에 마땅히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1인 가구의 심부름 요청이 눈에 띄었다.
심부름꾼이 된 이틀 동안 감기약 이외에도 냄비에 담긴 음식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캐릭터 인형 등을 배달하는 심부름을 수행했다. 담배나 주류 등 간단한 물품 구매 대행부터 집 안에 나타난 돈벌레를 대신 잡아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심부름 앱 사용 경험이 있는 유모(32)씨는 "혼자 살면서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심부름값이 과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필요한 경우 재차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