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수원 다음으로 벌어진 데모(시위)였고 읍 소재지 이하 작은 시골로서는 (전국)처음이었던 만큼 의의가 컸다." 지난 1960년 3월13일 당시 오산고등학교 학생부였던 조성환씨는 이승만 정권 부정선거(1960년 3월15일)에 맞서 그날 일어났던 오산지역 학생 시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오산고 2학년 학생이던 이광정씨도 "거사 전날인 3월12일 토요일 우린 학교 뒷산(청학산)에 모여 다음 날을 모의했다"며 "이튿날 청학산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시내로 행진하던 중 선생님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시내 장터까지 달려 플래카드를 들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오산, 읍·면·동 단위서 '최초 데모'
"뒷산서 회의… 선생님 만류 뿌리쳐"
이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재집권을 막으려는 장면 부통령의 연설장으로 향하려던 걸 막아선 경찰들에 반발한 학생들이 오산에서 일으킨 시위 관련 증언들이다. 4·19 혁명 50주년인 지난 2010년 4월 발행된 '4월혁명 통사(저자·홍영유)'에 기록들이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4·19 혁명을 앞두고 읍·면·동 단위로는 오산에서 전국 최초 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저자 홍씨는 "경찰 억압에 불복하고 일어난 이날(1960년 3월13일) 데모는 일요일임에도 전교생이 집합했고 시장에서 '부정선거 규탄'과 '학원 자유'를 외치는 결의문을 낭독했다"며 "평소 온순하던 시골 학생들이 의를 위해 궐기한 이 의거를 본 시민들도 환호성을 아끼지 않았다"고 당시를 기록했다.
수원농림고 '하루 전날 시험 통보'
"유세장 가지 못하게 하려던 요령"
'부정선거' 이승만 정권 철폐 큰 영향
3일 전인 3월10일 수원에서 수원농림고(현 수원농생명과학고) 학생 200여 명이 시위에 나섰던 건 단 하루 전 학교 측이 통보한 시험 때문이라는 증언도 있다.
당시 생존자 송강진씨는 "시험은 미리 예고하고 준비기간을 주는 게 관례인데 그땐 3월9일 하굣길에 갑자기 알려줬다"며 "다음 날 수원공설운동장에 있을 장면 부통령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할 요령임이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당시 수원농고뿐 아니라 일부 수원고·수원여고 등의 학생들까지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수원역전 쪽으로 행진하다가 경찰들의 제지로 해산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당시 서울 이외 경기도 곳곳에서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혁명이 이어졌으나 현재 이와 관련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나 기억은 갈수록 줄어들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960년 4월19일 서울 시위 현장에서 총상을 당한 김정만 4·19 민주혁명회 경기도지부장은 "전국 각지는 물론 당시 경기도 학생들도 읍·면·동 단위 첫 시위를 일으키는 등 이승만 정권 철폐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요즘 학생들은 4·19가 뭔지도,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해 이와 관련한 교육과 관심이 더욱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