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4명이 사망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이 알려졌다. 11년이 지났으나 피해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공기 살인'이 최근 개봉하는 등 사회적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나온 피해구제조정안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는 등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정작업의 한 당사자인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기업 9곳 중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두 기업이 제조·유통한 가습기살균제 판매량은 60%를 차지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살균제 제조·유통 기업들과 피해자단체가 함께 피해 구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조정위는 제1·2차 조정안과 함께 추가 논의를 통해 지난달 최종 조정안을 마련했다. 사망자를 포함한 7천여 명에게 피해 등급과 연령대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마련된 것이다. 피해 구제를 위해 9개 기업이 내야 할 돈은 9천240억원 가량이다. 그러나 옥시와 애경이 거부하면서 11년 만에 도출된 조정안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

지금까지 정부에 피해구제를 신청한 피해자는 7천600여 명, 사망자는 1천700명에 달한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지역에서 지난 3월까지 정부에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490명이었고, 이 중 피해구제 인정자는 287명에 불과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등급은 총 6단계로 나뉜다. 등급에 따라 매달 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요양생활 수당은 최대 185만원까지다. 매월 185만원의 생활수당을 받는 초고도 피해등급을 받으려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여야 한다는 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피해구제 인정을 받기도 힘들지만, 인정자 상당수가 많지 않은 요양생활 수당을 받는 수준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고통은 후유증 등을 고려할 때 평생에 걸칠 수도 있다.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고통의 일부라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조정위의 합의안이 도출되길 바란다. 두 기업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