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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
의자가 단순한 소품이 아닌 이유는 인간과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자에서 많은 일을 한다. 현대인에게 의자는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는 장소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시간이 늘어난 이후 휴식용이나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는 의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들은 가구에 대해선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진심으로 대하는 편이다. 일본의 유명한 인테리어 감독인 오자와 료스케는 자신의 책 '덴마크인들은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산다'에서 "덴마크인은 자신과 소중한 사람이 쾌적하게 생활하기 위한 공간에 돈을 쓴다"고 했다. 일 년의 절반가량 추운 날씨 속에서 사는 북유럽인들은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쾌적한 공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실내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덴마크 사람들이 의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의자에서 지혜와 삶의 철학을 배운다. 그래서 의자마다 각별한 의미를 담고 오랫동안 애장한다. 의자를 고를 때도 후대에 물려줄 튼튼하고 실용적인 것을 찾느라 수천 킬로미터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개별적 주체로 인정' 인식 효과적인 수단
기업들, 고가 사무용 의자 직원들에 제공


현대 건축의 거장인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의자는 건축이다"라고 했다. 현대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건축철학을 담은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도 르 꼬르뷔지에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르 꼬르뷔지에 이후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던 건축 자재를 이용해 자신의 철학을 담은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중에서도 르 꼬르뷔지에의 'LC암체어'는 독보적인 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중에게 'LC1'로 알려진 이 의자는 1928년 르 꼬르뷔지에와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샬롯 페리앙, 피에르 쟌느레가 함께 디자인해 내놓은 작품이다. 제품으로 출시된 지 9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명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가이자 작가인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도 "의자는 한 사람을 위한 가장 작은 크기의 건축"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의자는 사람의 몸하고 닿는 첫 번째 장치이며, 건축 공간적으로 우리가 뭔가를 프레임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의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인간이 공간을 구성하는 첫 단계가 바로 의자를 만드는 것이고, 가구 중 인간과 가장 밀접한 것이 의자라는 얘기다.

최근 국내 IT기업들이 성공한 기업의 이미지와 직원 복지 '끝판왕'으로 불리는 200만원 대의 허먼밀러 사무용의자를 제공해 화제다. 미국 사무용 브랜드인 허먼밀러 의자는 일명 '의자계의 에르메스', '의자 샤넬'이라고 불리며 최하가 100만원이 넘고, 인기 제품은 270만원에 달한다. 최근 SK하이닉스가 내년 3월까지 전 사업장에서 근무용으로 허먼밀러 의자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에는 임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200만원대 의자를 대당 80만원대에 1인당 2개까지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키로 해 또 한 번 주목받았다. IT업계에서는 네이버가 2005년 본사를 이전하면서 직원들의 의자를 이 회사 제품으로 전면 교체해 한때 '네이버 의자'로도 불렸다. 애플 구글 등에서도 임직원 구분 없이 이 의자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신증권, 카카오 등이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복지 기준 아닌 좋은 평가 받을 만하기 때문
성과 이뤄 존중·배려하는 문화 확산 반길 일


기업들이 직원들의 의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업무공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공간이 구체적 행위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 있는 장소로 바뀌지 못하면 '장소상실'의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의자는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고 칼럼에 썼다. 그러면서 "의자에 앉았을 때, 주체로서 삶이 확인된다"고 했다. 개인이나 구성원이 개별적인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의자'라는 얘기다.

고가의 의자를 제공하는 것이 기업 복지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직원들에게 최고의 제품으로 최상의 대우를 하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얘기다. 요즘은 고가의 의자가 아니더라도 수준 높은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성과를 이뤄낸 직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기업문화 확산은 반길 일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