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의 언급 이후, 고 박길래씨가 2000년에 사망한 환경운동가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집 주변 연탄공장에서 날아든 분진으로 진폐증에 걸렸지만 생소한 병증만큼이나 사례가 드물었으므로 국가와 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결국 그가 14번이나 법정에 서며 대법원에서 '최초의 공해병 환자'로 인정받은 것은 병을 앓고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이는 한국 사법부가 환경문제로 '신체피해'를 인정한 첫 사례로 이후 환경운동의 이정표로 남았다.
상을 받는 자리에서 배우들이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은 흔하다. 반면 자신과 접점이 없거나, 흐릿한 이들을 호명하는 모습은 드물어서 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2012년 SBS '추적자'라는 드라마로 연기인생 20년 만에 연기대상을 탄 손현주씨가 "지금도 어디서 밤을 낮처럼 샐"거라면서 어둠을 밝히는 이들을 '개미들'에 빗대 호명한 것은 그래서 잊히지 않는다. 해외배우 가운데 영화 '조커'로 2020년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가 젠더·인종 차별 문제를 일부러 꺼낸 모습도 어제 일 인양 또렷하게 다가온다.
리베카 솔닛은 사건이나 개념의 비뚤어진 '이름'을 정확히 명명하는 것이 '해방의 첫 단계'라고 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이름을 얻기 전 숱한 고초를 보라. 하지만 '해방'의 다음 발걸음은 그 '진실의 이름'들을 애를 써서 호명하는 이들 덕분에 이어진다고 믿는다. 조현철, 손현주, 호아킨 피닉스가 그런 이들이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