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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무심코 흘려넘긴 장면들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얼얼한 뒷맛 때문에 추리물에 빠지게 된다. 창작자는 범죄 징후나 단서에 대해 알게 모르게 시그널을 보낸다. 흔히 말하는 복선이다.

 

여러 복선을 거쳐 비로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게 추리물의 허다한 전개방식이긴 하나 그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장르가 특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실감 있는 줄거리에 있다. 현실에 진짜 있을 법한 사건을 그럴싸하게 구성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제 현실 속 사건에도 복선은 반드시 존재한다. 김포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지적장애인 암매장사건이 그랬다. 피해자는 자신처럼 지적장애가 있는 피의자들과 지난해 가을부터 인천 남동구 작은 빌라에 모여 살았다. 약 4개월간 그는 동거인들의 지속적인 폭행을 견디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이번 사건도 곳곳에 복선이 깔렸었다. 사건 두 달여 전, 피해자에 대한 감금·폭행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었다. 이보다 앞서서는 동거인들이 갓난아이를 방임해 아이가 양육시설로 분리된 일이 있었다. 이웃주민이 해당 가정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주민복지센터에 문의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사회의 관심을 유도하는 듯한 범행현장의 시그널은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소멸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주민복지센터, 장애인시설은 저마다 포착한 이상 징후를 타 기관과 연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피의자들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주민복지센터에 지원요청이 있었다는 것도 경찰수사가 아니라 탐문 취재로 파악된 사실이다. 이들 기관은 취재 과정에서도 개인정보임을 앞세워 답변을 꺼렸다.

만약 김포 암매장 사건의 복선을 기관끼리 협의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누적된 자료를 토대로 사건 전모를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흉악범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보다 개인정보가 우선시되면서 스물여덟 지적장애인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