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가족을 구성하는 최초이자, 최소의 단위인만큼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계다. 둘(2)이 하나(1)가 되는 날이라는 의미로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지난 2007년, 처음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1995년에서의 일이다.
이후 조명된 부부의 모습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현재 사회를 진단해볼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됐다. 최근 널리 쓰이는, 또 새로 떠오르는 부부관계에 관한 신조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확인해본다.
딩크족은 이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흔한 말이 됐다. 비슷한 신조어로는 바빠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딘트족(DINT·Double Income, No Time族)이나 바쁘고 피로해 부부관계에 소홀해진 딘스족(DINS·Double Income, No Sex族)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업무처리는 빨라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한 지금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삶의 주인공 뺏기고 싶지 않아"
아이 없이 인생 즐기는 딩크족
성남에 거주하는 최모(39) 씨는 결혼 8년 차가 됐지만 자녀 계획은 없다. 동갑내기 아내와 비록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탄탄한 IT회사에 다니면서 친구들에 비해 결코 낮은 소득은 아니고 작지만 일찌감치 내 집 마련도 마쳤다. 경제적인 이유로 딩크족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최 씨는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어려서부터 가족의 중심, 주인공으로 살아왔다"며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내 삶의 주인공 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녀의 성장에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최 씨는 "주위 분들이 나이 들면 외롭다고 하지만 아직 와 닿지 않는다"며 "부부지만 각자가 살고 싶은 삶을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또 둘의 삶을 오롯이 즐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돌아가다(return)와 캥거루(kangaroo)족의 합성어다. 결혼 후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세대와 재결합해서 사는 자녀 세대들을 뜻하는 말로, 주택문제와 육아문제로 리터루족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 같이 성년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에서도 경기침체로 이런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수원에 거주하는 황모(40)씨는 7년 전 리터루족을 선택했다. 사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외벌이 생활이 시작되면서 '선택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수입이 줄어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 혼자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막막함으로 부모님께 기대기로 한 것이다.
"오히려 가족 간 유대 더 강해져"
부모세대와 재결합한 리터루족
황 씨는 "처음 본가에 들어가기로 했을 때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잠도 못 잤다"면서도 "요즘은 결혼하면 부모 자식 간에도 자주 보기 힘들지만 본가에 들어가서 살다 보니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처음 집을 합쳤을 때는 서로 생활 패턴이 다르고 사소한 버릇까지도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서로 조심하는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내 말로만 '어머님', '새아기'에서 마음이 통하는 가족이 됐다.
황 씨는 "서로 다르게 살아온 가족 간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다른 부부보다도 가까워졌다"며 "부부관계가 꼭 둘만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리터루족의 삶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둥지(Nest)'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사회적인 성공의 추구보다 가정을 중요시하여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신세대를 뜻한다. 사회적 성공이 삶의 목표이자, 가족의 행복이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치열한 사회활동과 개인주의 성향으로 가정 해체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때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그에 대한 반발심리가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주 5일제로 여가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부상하면서 나타났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소득 줄었지만 행복한 집 만족"
직장보다 가정 최우선 네스팅족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네스팅족의 출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천에 거주하는 박모(37)씨는 최근 육아휴직을 냈다. 코로나19에 대한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회사 일이 바빠졌지만, 결혼할 때 당시 육아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함께 휴직을 신청했다.
박 씨는 "회사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당장에 소득이 줄어들었지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 후에 잠시 만났다가 다음날이면 헤어지는 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상대가 힘들어하는 점을 잘 알게 됐다"며 "사소한 다툼이 늘기도 했지만, 어려운 육아를 함께 헤쳐나간다는 마음이 부부를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육아휴직을 마치더라도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고 업무 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하는 대신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새로 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