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가득 쌓인 쌀을 보면 누구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 농가에게는 결례가 될 수도 있겠다.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창고에 쌓인 물량이 정리돼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요 몇 년 풍년이 들며 생산량은 늘었는데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재고가 쌓여있다. 수 개월 내 햅쌀이 생산되는데 이를 보관해야 할 창고에 아직도 지난해 생산물량이 산적한 것이다. 지금 소비되는 추세라면 3~4개월 뒤가 아니라 1년이 지나도 햅쌀이 갈 곳이 마땅치 않게 된다.
이에 쌀농사를 하는 농가와 농협은 현재 비상 사태다. 햅쌀이 생산되기 전에 전년도 쌀을 처리해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비단 경기, 인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 현상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햅쌀 나오기전 작년 생산 쌀 처리 못해 비상
시장격리 불구 가격 낮아 농가 반응 미지근
이 같은 상황에 정부(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쌀에 대한 시장 격리를 추진했다. 시장 격리는 시장에 격리(정부매입)를 통해 공급량을 의도적으로라도 줄여 시장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올 2월 1차로 14만4천만t이 시장 격리됐으며, 지난 16일 2차분 12만6천t이 이뤄졌다. 이들 정부 매입분은 지난해(2021년산) 쌀 초과 생산량 27만t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경기·인천지역 농가에선 반응이 미적지근한 상황이다. 정부의 매입 가격 때문이다.
올 초 쌀 1차 시장 격리에 나섰을 때 정부는 각 시·도에서 제시하는 가격 중 최저가부터 매입하는 '역공매'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가격이 당시 40㎏ 기준 6만4천원 정도. 하지만 경기도 내 농협의 기존 쌀 수매가가 7만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1만원 가까이 손해보고 내놔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2차 시장격리 입찰이 이뤄졌고, 평균 낙찰가격은 40㎏ 기준 6만643원. 1차에 비해 더 낮아진 가격대다.
농가나 수매를 통해 쌀을 매입했던 농협 입장에선 더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쌓여가는 물량을 방치할 수도 없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처분해야 하는지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 됐다. 이마저도 매입물량(12만6천t)이 많지 않다보니 원한다고 다 매입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통계청의 지난달 25일 기준 산지 쌀값은 4만7천319원(20㎏)으로 전년 수확기 대비 11.6% 하락한 상황이다. 앞으로 닥칠 추가 하락을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역별 특성 고려 매입비 차등 책정 주장도
3차 추진 제안했지만 농민 달랠 대안 시급
이에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시장 격리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도내 소재한 한 농협 관계자는 "지역별 특성이 있어 경기도는 다른 지방 시·도들과 쌀 수매 가격 형성 수준이 다르다. 정부도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비싸게 매입한 것을 무조건 손해를 감수하고 싸게 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형성되는 시장 가격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쌀값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농민들은 한 타임 늦게 추진되는 정부의 쌀 시장격리 시기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추가 격리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 20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쌀 수급 안정을 위해 10만여t에 대한 3차 시장격리를 요청했다. "2차 시장격리가 실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쌀값 안정이라는 정책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3차 추가 시장격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신속하게 쌀 10만여t에 대해 3차 시장격리를 실시해달라"고 제안했다.
올해도 풍년이 예상되고 있다. 분명 풍년이 들면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농민들은 수매 값 등으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농심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등으로 어수선하다.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는 요즘, 농심을 달랠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윤희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