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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경 경제산업부 기자
얼마 전 저녁을 먹으러 수원 행궁동에 갔다. 동행한 이가 '맛'에 일가견이 있어 그가 가자는 곳으로 갔다. 주택을 개조한 인테리어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행궁동 고유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산뜻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산뜻한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름과 가격만 적힌 불친절한 메뉴판 때문이었다. '후토마키'라는 생소한 메뉴도 있었다. 지인에게 물어보자 '김밥 같은 음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궁금증이 일어 시켜봤고,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모습은 영락없는 김밥이었다. 횟감을 속 재료로 쓴 뚱뚱한 김밥. 구글에 검색해보니 '일본식 김밥'이라는 설명이 쏟아졌다. 일본식 김밥 또는 대왕김밥 등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충분히 있는데도 후토마키라고 표기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는 비단 행궁동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인계동엔 일본어로 된 간판을 단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해당 가게는 외관부터 '여기가 일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게를 꾸몄다. 그림을 보지 않는다면 어떤 음식을 파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본보기가 돼야 할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보인다. '포켓몬빵' 열풍을 타고 매출과 주가 모두 고공행진 중인 SPC그룹이 대표적이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는 최근 '이상해씨 아이스 모찌 피규어 세트'를 출시했다. 피규어 안에 찹쌀떡이 들어있는 제품인데, 이 또한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배스킨라빈스는 해당 제품 외에도 일부 디저트류를 모찌라고 표기하면서, 찹쌀떡 속에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다고 설명한다. 내부적으로도 모찌와 찹쌀떡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굳이 모찌라고 표기한 셈이다.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사용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세라면 머지않아 메뉴판에서 한 번에 알 수 있는 우리말로 된 메뉴이름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모찌, 호르몬동(대창덮밥), 마제소바(일본식 비빔면) 등 메뉴판마저 외래어에 점령당한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윤혜경 경제산업부 기자 hyegyu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