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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정치부 기자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을 때,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취업이 주목적인 특성화고교에서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특성화고에서는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기에, 야간자율학습도 없었고 고3 때까지도 상당수 수업은 실기 수업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뒤늦게 취업이 아닌,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을 때 앞이 막막했다.

대학 진학의 문은 정말 좁았다. '특성화고 특별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는데, 지원할 수 있는 학교도 제한적이었고 선발인원도 한 학과에 1~2명에 불과했다. 수능으로 3년 동안 공부한 이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에서 사실상 해당 전형으로만 진학할 수 있었다.

고교시절 내내 컴퓨터그래픽 등 디자인 분야만 배웠는데, 대학에 들어가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그 선택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는 천차만별이다. 대학 진학을 결정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찾은 사람이라면 인생계획을 차근차근 짜면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도 계획이 틀어지는 등 변수가 생기는데, 꿈을 찾지 못한 이들은 선택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에 취업해서 결혼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다.

중간에 무언가를 꿈꾸며 마음 놓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치 않다. 1~2년의 공백기만 있어도 "쉬는 동안 뭘 했어요?", "공백기가 긴데, 이때는 무엇을 했나요?"라는 면접관 질문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려면 그 답을 위해 또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이 선뜻 꿈을 찾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민선 8기 경기도정을 이끌 김동연 도지사 당선인이 '경기청년 갭이어(Gap year)' 정책을 내놨을 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갭이어 정책은 청년들한테 쉴 틈을 주고 사회에서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찾을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본인을 탐구하고 미래를 설계할 시간을 준다는 것인데, 청년 입장에서 반가운 정책이다. 그 대상도 일반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하다가 퇴사하고 공백기를 가지는 이들 등으로 확대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여기에 더해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청년학교' 등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성공하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암묵적인 룰을 깨야 한다.

김 당선인도 이 같은 우려를 아는지, "우리 사회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해당 청년이 공백기에 무엇을 했는지, 도에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공백기를 가진 청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안다는 것인데, 일반 기업들이 이 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인지, 도의 평가를 순순히 받아들일지 우려가 된다.

경기청년 갭이어를 포함한 김동연표 청년정책이 도전이 어색한 사회에 작은 변화가 될지는 지켜볼 문제다. 청년의 한 사람으로 해당 정책들이 기대도 되지만, 이 같은 정책이 확산할 수 있도록 공백기를 가진 청년, 꿈을 찾으려는 청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