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윤석열 대통령의 여름휴가에 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의 휴가라는 것은 국정을 살피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휴지기를 갖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있을 미래를 생각하며 정국을 가다듬는 구상의 시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 시민도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 산과 바다, 계곡을 찾거나 조용한 장소를 찾아 마음과 머리를 비우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도 다 그런 맥락이지요.
대통령의 휴가는 대체로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사진이나 메시지를 내면서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담아내곤 합니다.
미국이나 선진국의 경우 대통령궁을 떠나 따로 묵을 대통령 별장이 있습니다.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 같은 곳은 외국 국빈들과 만나는 공간이기도 한데, 우리나라도 충청지역의 '청남대'와 남해안의 '저도'를 많이 애용합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고'에 시달리며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휴식의 시간을 갖되 지방 일정은 취소했습니다.
애초 2~3일 정도 지방 일정을 담은 것은 민생을 돌아본다는 의미였으나 그마저도 취소했습니다.
국정지지율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국민의힘 지도부 사정도 좋지 않은 '비상상황'을 맞으면서 맘 편히 쉴 수나 있었을까.
■ 윤 대통령의 휴가는 8월 1일부터 5일까지입니다. 오늘로써 공식 휴가는 끝나는 셈이지요.
첫날인 1일부터 윤 대통령의 휴가는 좀 특이했습니다.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도하 언론에선 인적 쇄신과 대통령실 개편 문제가 부상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 앞으로 정국 운영을 위한 정국 구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지요. 그러나 대통령실은 안 해도 될 반응을 보이며 이상한 모습을 연출하더군요.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오후 브리핑 시간에 대통령의 근황을 설명했습니다. 아직 휴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처럼 '푹 쉰다. 대부분의 시간 잠을 자고, 영화 보고, 산책도 한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다고 이런 워딩이 나오는지, 인적 쇄신과 개편을 요구하는 세상의 요구에 정면 대응이라도 하듯 세상 이치와 사뭇 다른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자가 볼 때, 윤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서초동 자택에서 '쉬기만 한다'는 분위기를 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야, 대통령실이 굳이 이런 자택의 모습을 전할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때 설명은 이랬습니다.
"지금은 계속 댁에서 오랜만에 푹 쉬시고 많이 주무시고 가능하면 일 같은 건 덜 하시고,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푹 쉬고 있는 상태다. 대통령은 작년 6월 정치를 시작한 이후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취임 이후부터는 일정이 하루에 몇 개씩 될 정도로 바빠서 휴식을 못 한 상태로 사무실에 나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으로 정국 구상의 일환으로 대통령실 인적 쇄신 등을 놓고 장고하고 있다는 관측에 거듭 선을 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 언론이 대통령실 관계자나 여권 관계자를 언급하며 휴가 후 바로 개편이 있을 거로 전망한 데 대해 "대부분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습니다. 억측이라고까지 했지요.
■ 이 쯤되니 국민들은 지금이 푹 쉴 때냐고 지적을 합니다. 휴가 중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하고 있다는 건 당연한데, 왜 굳이 참모들이 나서 '억측이니, 푹 쉬시는 중'이라는 반응을 보이느냐고 소곤댑니다.
그 다음 날은 비서실 전원 사의 표명이라는 기사도 나오니 "그런 적 없다"고 펄쩍 뛰기도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수요일인 3일은 오랜 시간 비어있던 홍보수석비서관실의 홍보기획비서관 인선을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김건희 여사의 어느 행사에 참여했다나요.
기자들은 '이게 뭔가. 인적 쇄신없다는 얘긴가'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실 분위기는 인적 쇄신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중론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4일 대통령실의 한 핵심 관계자와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대통령이 취임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평가할 시기도 교체할 타이밍도 아니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대통령실 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전하더군요.
다만 "대통령이 출근하면 산더미처럼 쌓인 국정 과제가 많다며 더 정진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있지요.
경제도 어렵고 힘든 데 여권의 사정마저 더 꼬여 국민들을 짜증 나게 하는 시기에 뭔가 속 시원한 '한 방'을 국민은 기대하는데, 아직도 '우리에겐 시간이 많다'는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어찌 이렇게 국민과 엇나가는 모습만 보일까요.
지금 SNS상에는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정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까지 나서 윤 대통령이 최근 보여준 일련의 정치 과정을 짚어 내면서 분노를 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여권에 휘몰아치고 있는 몇 가지 사안들, 굳이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것들이 국민들의 생각과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면 아마도 다음 주부터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미 지지율은 바닥 밑 '지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전직하 분위기입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지난주보다 추가로 떨어지면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5일 나왔지요. 한국갤럽이 지난 2∼4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4%,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6%로 각각 집계됐습니다. 직무 긍정 평가는 6월 둘째 주 53%에서 한 달 넘게 내림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휴가 정국 구상에 대한 기대는 끝났을까?
여의도 정가엔 윤 대통령이 이번 휴가 기간 사람과 만나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많이 들립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에 내려가 나뭇가지로 모래밭에 쓴 '저도의 추억' 같은 사진은 없지만, 지난 3일 저녁 부인 김건희 여사와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하고 인근 식당에서 배우들과 식사를 하면서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듣고 배우들을 격려했다는 소식은 참 보기도 듣기도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약주'(?)를 즐기면서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데, 복귀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통 큰 메시지, 변화된 '한방'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