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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기림의 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2.8.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우리는 나이 어리고 잘 몰라 고통을 많이 받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함께 해주기 바랍니다."

지난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5) 할머니가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었다. 90세가 넘은 고령에 휠체어에 앉아 불편한 치아 사이로 흘러나온 단호한 문장 사이에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있었다.

이옥선할머니 등 3명 휠체어 참석
러·中·韓… 어린이합창단 공연
'나의 살던 고향은'에 손뼉 장단

위안부 기림의 날(14일)을 하루 앞둔 이날 광주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 '기억에서 소망으로'가 열렸다. 기림의 날은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로 2018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돼 5회째를 맞는다. 2012년 민간단체에 의해 처음 '세계 위안부 기림일'이 제정된 때 부터는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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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기림의 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2.8.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행사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멕시코, 온두라스, 방글라데시, 미얀마, 중국 그리고 한국 어린이로 구성된 다문화 어린이합창단 아름드리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꽂 살구꽂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18명 아이들의 목소리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 행사장에 울려 퍼지자 위안부 피해자 강일춘(95)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손을 흔들며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80년이 넘는 세월이 차이가 나는 무대 위 소녀와 휠체어 위의 소녀가 교감을 이루는 듯 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나눔의 집에서 기거하는 네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강일춘, 이옥선, 박옥선(98) 세 분이 참석했다. 나머지 한 분 피해자 할머니는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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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기림의 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2.8.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지난 1991년 개소한 나눔의 집은 1992년 광주 퇴촌으로 이전해 1996년 경기도지사로부터 사회복지법인 설립허가를 받고 운영돼 왔다. 코로나19로 2020년, 2021년 연이어 기림의날 대면 행사를 치르지 못했고 올해 2019년 이후 3년 만에 행사가 재개됐다.

나눔의 집 대표이사 성화스님은 "(수해로 교통이 통제된)아침 상황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문화 어린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린다. 하루하루 기력을 잃어가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곳 나눔의 집은 어르신의 아픈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성지와 같다. 기록과 유품을 잘 관리해 일본군의 만행을 잊지 않고, 힘없는 국가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지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눔의 집이 행정력 부족으로 지탄을 받았으나 신뢰를 회복하는데 더욱 매진하고 있다"며 최근 경기도 감사 결과를 거론했다.

100여개 노란색 종이비행기 날려

성화스님은 "주민감사 청구를 통해 이곳에서 어르신을 모시는 것은 노인복지법의 양로시설 규정에 위배돼 다른 방법을 마련하라는 결과를 받았다. 어르신의 삶이 다하시는 날까지 이곳에서 사실 수 있도록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좋은 대안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대안을 주시면 그 규정에 따라 어르신을 모시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네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나눔의 집에서 20년 이상 거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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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가 열린 지난 13일 오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참석자들이 소망의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2022.8.13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할머니들의 기억과 소망을 담은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일본의 진정 어린 반성과 사과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100여개의 종이비행기는 잠시나마 나눔의 집을 노랗게 물들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