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밝힌 대일 외교방침과 과거 인식이 논란을 빚고 있다. 기념사 가운데 과거 일본을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식민지배를 축소 순화하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면 한일관계를 회복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우경화된 일본 정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낙관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정치적 지배'로 보는 것은 역사 왜곡에 가깝다. 일제강점기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식민지 시기를 말한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수탈하고 탄압했으며, '내선일체'를 빌미로 언어를 비롯한 민족문화까지 말살하려 한 가혹한 식민통치기간이었다. 이 같은 민족수난기인 일제강점기를 대통령이 '정치적 지배'라는 좁은 시야로 인식한다면 한·일 관계 정상화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김대중 오부치 공동성명'은 한일 외교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한다'는 기본 정신을 담고 있다. 이를 한일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원칙으로 삼았지만, 그 원칙은 일본에 의해 자주 훼손됐다. 아베정권은 식민지배를 사과한 이전 일본정부의 공식견해를 수정하거나 지속적으로 부인해 왔으며, 새로 들어선 스가정권도 '종군위안부'의 호칭에서 '종군'을 삭제하는 등 '공동선언'의 전제가 된 반성과 사죄를 구체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의 재무장화 움직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을 위한 무력을 갖지 않고 방위에 전념한다는 '전수방위'와, 비핵3원칙을 견지하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는 일본의 노력을 평가했다. 그런데 현재 일본의 '전수방위'와 '비핵3원칙'은 모호해졌으며,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한일관계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원칙으로 보고, 한일 간 우호협력 관계를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과거사와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한일관계 구상은 굴종외교로 흐르거나 실현될 수 없는 아이디어로 끝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설] 한·일관계, 과거를 직시해야 미래로 갈 수 있다
입력 2022-08-18 19:10
수정 2022-08-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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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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