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_-_데스크칼럼.jpg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
"휴대폰이 있는데 굳이 손목시계를 찰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휴대폰이 손에 들려 있고 항상 켜져 있지 않은 상태라면 손목을 살짝 돌려 시계를 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렇다고 휴대폰보다 빨리 시간을 확인하려고 손목시계를 차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시각을 확인하는 기능으로 손목시계를 사용했다면, 요즘은 개성이나 취향을 표현하는 데도 활용한다. 옷차림을 돋보이게 하고, 좋아하는 디자인이나 특정 브랜드를 착용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10살 때 아버지한테서 흔들어서 태엽을 감는 방식의 기계식 손목시계를 물려받은 이후 45년 동안 시계를 차 왔다. 시계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모은 시계가 여럿이다 보니 날씨나 옷차림, 여가활동 등 상황에 맞춰 바꿔 찬다. 스마트워치는 디지털 방식이긴 하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 형식의 다이얼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 하나로 여러 개의 시계를 차는 느낌을 준다.

시계 본연의 기능은 시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시각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사용자에 따라 활용법도 다양하다. 필자는 주로 시간의 '양'(量)을 파악하는 데 사용한다. 시간의 양이란 일상에서 반복하는 일에 걸리는 시간이다. 예를 들면 출근 준비에 걸리는 시간, 일정한 양의 원고를 타이핑하는 시간, 자주 오가는 장소를 이동하는 시간, 통상적인 인터뷰에 걸리는 시간 등이다. 시간의 양을 확인하면 일의 앞뒤 시간을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간의 양을 파악하는 데는 시침과 분침, 초침으로 표시된 아날로그 시계가 직관적이다. 


필자, 출근·타이핑 등 '시간의 양' 파악 사용
군대, 정해진 시각 행동·임무 중요하게 여겨


경영자이자 컨설턴트인 일본의 우스이 유키도 '일주일은 금요일에부터 시작하라'는 책에서 "숫자만 표시되는 디지털 시계는 남은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지만 아날로그 시계는 시계 다이얼에 새겨진 도형으로 파악할 수 있어 순간적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고 썼다.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 시간 후에 회의를 시작한다든지, 십 분이면 작업이 완료된다든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는지를 시계 다이얼을 봄으로써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우스이 유키는 시간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을수록 '시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잠깐 손목을 살짝 돌려 시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관념'이 정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시간 감각이라면 군대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정해진 시각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임무가 많기 때문이다. 군용 손목시계 수요는 2차 세계대전 때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작동되면서도 고장이 적고, 정확성을 요구하는 시계가 주문 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주로 스위스와 미국 시계회사들이 항공기 파일럿시계를 비롯해 해군 항해사시계, 잠수부 다이버시계, 육군 필드(야전)시계 등 임무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시계를 군에 납품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최초의 손목시계는 1904년 카르티에가 파일럿인 친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을 위해 비행 중에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로마숫자에 사각형 테두리(베젤)로 디자인된 '산토스' 모델은 지금도 카르티에를 대표하는 시계 중 하나다. 휴대성을 높인 손목시계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가격이 비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물이나 귀중품으로 여겼다. 카르티에가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들었다면, 이를 대중화한 것은 일본의 시계회사 세이코다.

세이코는 1970년대 중반 작은 배터리로 수정(쿼츠)진동자를 움직이는 방식의 시계를 제작했다. 쿼츠진동자의 대량생산이 이뤄지면서 세이코는 손목시계를 싸게 판매했다. 세이코는 짧은 시간에 세계 시장의 90%를 석권했다. 이를 계기로 스위스 시계 회사의 70%가 문을 닫거나 인수, 합병됐다. 1970년대 말 유명했던 '쿼츠파동'이 바로 세이코 때문에 일어났다. 현재 시계시장은 오토매틱 방식의 기계식시계, 쿼츠시계, 전자시계 등 세 가지 제품군으로 나뉘어 있다.

사람마다 시간 활용 여부로 삶의 질 달라져
기분전환 필요하다면 서랍속 시계 꺼내보길


시간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겐 지각이나 마감이 늦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시간에 휘둘리고 쫓기는 사람에겐 여유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의 효율성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일상의 작은 변화나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서랍 속에 두었던 손목시계를 꺼내보기를 권한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