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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지난해부터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대상은 기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수습기자'. 강의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정확히는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기자에게 '되도록 자살사건은 보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살사건을 보도하는 것보다 아예 기사화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다는 이유다.

하지만, 자살보도가 꼭 필요한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개인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원인에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을 때가 그렇다. 강의에선 주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한다. 당시 언론은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에만 매몰하지 않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이들 모녀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이유를 발굴해 보도했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졌다. 자살보도가 가진 힘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8년 만에 언론은 또 다른 세 모녀의 죽음을 맞닥뜨렸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앞서 경험한 언론은 이 비극에 '수원 세 모녀 사건'이란 이름을 붙이고 속보 경쟁에 나섰다. 정부와 지자체도 불과 며칠 만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후속 대책을 쏟아냈다.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진단보다 처방이 먼저 이뤄진 느낌이었다. 질병에 신음하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외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들 모녀는 정작 지자체에 복지급여조차 신청한 적이 없었다. 세 모녀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야 적합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다시 쓴 이유다.

"자살보도는 심리부검과 같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수습기자들에게 꼭 하는 말이다.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기에 수원 세 모녀의 죽음에 다시 질문하고, 의문을 품고, 궁금증을 가졌다. 부족하게나마 다시 쓴 일련의 기사가 '○○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