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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서 버리는 것과
배 속에서 지우는 것 뭐가 더 나쁜가

 

"아이를 낳아서 버리는 것과 배 속에서 지우는 것 뭐가 더 나쁜가."

영화 '브로커'가 던진 물음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베이비박스는 현실에서도 딜레마에 빠진 부모가 찾는 마지막 선택지다.

베이비박스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견과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입장이 상충한다.

지난달 말 국내 3호 베이비박스를 제주도에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조례 제정이 논의 석상에 오르면서 또다시 베이비박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재 국내에는 군포와 서울 딱 두 곳에서 운영 중이다.

'국내 3호' 제주 설치 갑론을박
아이 두고갈 땐 무죄-집행유예
법원 판단도 제각각 '혼란 가중'


베이비박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제각각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겨 처벌받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베이비박스를 찾은 친모가 최근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길 경우 영아유기죄가 성립되는데, 경찰이 이를 인지하거나 신고를 접수하면 수사에 착수하고 소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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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사법부의 판단도 제각각이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연합뉴스

지난 7월에는 영아유기 혐의를 받는 친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8년에서 2021년 두 번에 걸쳐 태어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편지와 함께 두고 간 친모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검사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보호하는 아기들을 돌보고 새로 맡겨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사람이 상주하고 있었고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두고 장소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상의를 거쳐 아이들을 맡긴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전에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떠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된 피고인은 대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3년간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5명 중 3명(수도권 법원 기준)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에 처해졌다. 판결문을 보면 이들 부모는 준비 없는 출산, 이혼 준비 중 혼외 임신, 가정 내 불화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이유로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영아 유기 혐의로 기소된 친모의 무죄를 이끈 연취현 법률사무소 Y 변호사는 베이비박스는 아동을 보호하는 장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는 아기를 살리려고 거기까지 간 것"이라며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때에 따라 제3자가 보호 대상 아동에게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는데, 베이비박스가 그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시은·유혜연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