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으나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퇴임하지 않으면서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 임기가 끝나는 인권위원장이 대표적으로, 전방위 감사가 진행되면서 조직이 흔들리고 보수·진보 진영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경기·인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특히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지자체장과 전임 단체장 소속 정당이 다른 지자체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버티기를 하는 기관장 소속 공기업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으나 퇴임을 강제할 방안이 없어 고심하는 눈치다.

이런 가운데 이천시에서 단체장과 산하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내용의 조례안 제정을 추진해 관심이다. 시가 최근 입법 예고한 '이천시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장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임명권자의 임기가 끝나면 기관장 임기도 자동 만료된다. 새 시장이 취임하면 기관장은 잔여 임기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퇴임해야 하는 것이다. 시 출자·출연기관인 이천시청소년재단과 자원봉사센터, 문화재단에 적용된다. 다만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임기가 보장되는 시설관리공단은 제외하기로 했다.

조례안이 시행되면 임명직 기관장은 자동으로 물러나게 돼 불필요한 갈등과 부작용을 원천봉쇄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타 기초지자체는 물론 광역자치단체들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성남시를 비롯한 도내 상당수 지자체들이 전임 시장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물러나지 않아 후임 인선에 차질을 빚는 등 기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실정은 경기·인천 등 광역지자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임기제가 아닌 정무직 공직자에도 동일 잣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임명직은 임명권자가 물러나면 동반 사퇴해야 하는 도리와 처신을 외면한데 따른 부작용이 심각했다.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가 공기업 대표와 임원들을 가려내 찍어낸 죄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공기업 단체장 임기를 임명권자와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누차 제기됐으나 법제화가 계속 미뤄졌다. 이천시가 불합리한 관행을 깨보겠다며 먼저 손을 들었다. 시의회가 집행부의 실행의지를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