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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안산 다문화거리엔 매대마다 월병이 쌓여 있다. 2022.9.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라창, 포, 샹차이(중국식 소시지, 베트남 쌀국수, 고수)' 가지각색 언어들이 간판과 현수막을 수놓은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거리엔 한가위를 준비하는 디아스포라(다른 나라에 살기 위해 본국을 떠나 이주한 사람)의 흥겨움으로 가득했다.
애들은 잘 안 먹는데 그래도 명절이니깐 월병은 꼭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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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장에서 구매한 물건을 정리하는 홍장시씨 최애자씨 부부 2022.9.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지 벌써 25여 년이 흘렀다는 홍장시(78)씨 최애자(73)씨 부부는 월병이 쌓인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중국어로 속삭이던 부부는 언제까지 월병을 고를 건지 묻자 한국어로 답했다. "이건 만원인데, 옆에 건 만 이천원이잖아. 오늘은 그냥 아내랑 둘러보러 온 거고, 우리 아들이랑 먹을 건 9일에 살 거예요." 중국에선 명절에 '무조건' 소고기랑 월병을 가족들끼리 나눠 먹는다고 강조하던 이들 부부는 빈손으로 즐겁게 가게를 떠났다.
송편 중엔 꿀송편이 최고고요. 연휴에 여자친구랑 한강에서 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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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다문화거리의 중국 식료품 가게 풍경 2022.9.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소말리아에서 한국으로 온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알리(29)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연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했다. "평소에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죠. 어학당 다니다가 학부에서 경영학과 전공해서 한국어는 능숙해요." 휴가인 김에 친구도 만나고 비리야니(인도식 쌀 볶음 요리)를 먹을 겸 안산 다문화거리를 찾았다는 알리씨. 그는 한국에서 같이 일상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선 추석 때 가족들끼리 좋은 선물 많이 주고받잖아요. 저도 추석 때 가족들한테 키위랑 사과 같은 거 보낼 거예요. 같이 무역회사에 다니는 동료랑 주변 친구들이 다 가족이니까요."
추석 연휴 때 쉬긴요. 제일 바쁠 땐데 출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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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다문화거리 효자품목 과일 '두리안' 2022.9.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청둥오리알과 푸주를 파는 중국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유모(47)씨는 연신 사장실 쪽을 쳐다보면서 답했다. "난 못 쉬어요. 이 동네는 설날, 추석에 손님이 제일 많아서 미리 물건 정리해놔야 돼요." 유씨는 인터뷰 내내 노란 플라스틱 박스를 옮겨대며 답했다. 중국 길림성쪽이 고향이라는 그는 명절쯤이 되면 유독 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신랑이랑 다른 가족들은 한국에서 같이 살아서 괜찮은데, 친언니는 아직 중국에 있어서 많이 보고 싶어요."
공원에서 공연하거든요. 계속 연습해야 돼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지 4년 차인 베니(38)씨는 추석 당일 열릴 '레욕(인도네시아 전통 무용)'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30여 명의 친구들과 군무를 맞춰 춤을 춰야 하기에 매일 맹연습을 하고 있다. 베니씨는 휴대폰으로 지난 공연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아직은 서툰 한국어로 무용 동작들을 설명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같이 모여서 공연해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여기(안산)에 제일 많이 살거든요. 추석 공연 때 친구들이 보러 온다고 해서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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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씨가 과거 '레욕' 공연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2022.9.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고국을 떠나 한국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주민들. 이들은 안산 다문화거리에서 그들이 간직한 색깔 하나하나를 조화롭게 펼쳐놓고 있었다. 안산은 국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2022년 기준 안산 전체 인구의 11%가량이 이주민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