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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은 사회교육부 기자
미혼부 김지환씨는 9살 자녀를 홀로 키우는 과정에서 겪은 고초를 털어놨다. 어느 순간, 무던하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 태어나고 1년 4개월 동안 출생 신고도 못 했어요. 의료 혜택 등 국가 지원은 전혀 못 받았고, 결국 돈이 없어서 길바닥으로 내쫓겼죠."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미혼부 자격으로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려면 여전히 소송을 거쳐야 한다. 김씨가 가족법(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불합리함을 알려 사랑이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 과정이 더욱 복잡했다.

김씨를 만나기 며칠 전에는 여성인권 활동가 출신의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멸 시효를 범죄로 인한 후유증 진단 시점 이후로 변경한 데 일조한 인물이다. 시효는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종의 시간적인 한계다. 법 개정 전에는 10년 전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변호사는 의문을 품었고 1·2심에 이어 지난해 8월 손해배상 청구 소멸 시효를 후유증 진단 시점 기준으로 계산한 대법원 최초 판결을 이끌었다.

법은 변한다. 그 중심에는 불합리함을 알리기 위해 세상에 나선 이들이 존재한다.

때로 그들의 이름을 딴 법도 만들어진다. 김씨 자녀 이름을 딴 사랑이법부터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중 숨져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친 김용균법,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 중요성을 일깨운 민식이법 등이다.

저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이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혹여나 제2의 피해자가 생기더라도 억울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기꺼이 본인의 이름을 내주거나, 수년간 법원 문턱을 드나드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며 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고쳐왔던 국민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시은 사회교육부 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