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한파가 불어닥친 18일 오전 최순자(80대)씨는 '입춘대길'이라 적힌 새 보금자리로 살림살이를 하나둘 옮기고 있었다. 겨울을 앞두고 40년간 살던 9㎡ 남짓 공간을 떠나는 그가 새로 머물 집은 바로 옆 다른 '쪽방'이다.
수도시설과 화장실이 열악한 쪽방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겨울 이사가 힘들어 최씨와 이웃들은 이사를 하루빨리 마치려 서둘렀다.
"마당 얼기전 미리 싱크대 청소
난방 틀어도 외풍에 '으슬으슬'
연탄값 올라도 기름보다 낫다"
난방 틀어도 외풍에 '으슬으슬'
연탄값 올라도 기름보다 낫다"
이날 오전 찾아간 수원시 고색동 한 쪽방촌은 최씨 말고도 겨울맞이에 한창인 주민들로 분주했다. 전날 싱크대 청소를 도왔던 옆집 중년 남성 A씨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집기를 닦으면 마당으로 물이 다 흐른다. 추워지면 바닥이 어니까 빨리 끝내려는 거다"고 설명했다.
지난 겨울 혹독했던 쪽방의 살얼음 추위를 떠올리며 이곳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주민도 있었다. 새로운 거주지로 옮기기 전 잠시 머물 거처를 찾은 강모(32)씨는 "난방을 틀어도 외풍이 심해 으슬으슬하다. 밖에 있는 화장실 변기 물이 얼어붙은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기초연금 30만원 가지고 기름값 내기가 버거웠다
연탄보일러를 쓰는 평동 일대 쪽방들은 신경 쓸 게 더욱 많았다. 연탄 화덕 교체, 연탄 쟁여놓기 등 가욋일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번거로워 한때 지원을 받고 기름보일러로 교체했던 적도 있지만, 연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다시 연탄보일러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날 만난 김덕분(84)씨는 "기초연금 30만원 가지고 기름값 내기가 버거웠다. 연탄값이 오르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기름보다는 낫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쪽방 주민 정모(69)씨는 지난해 겨울 연탄이 다 떨어져 직접 지게를 메고 이곳저곳 연탄을 꾸러 다녔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연탄이 제일 많이 필요할 때 딱 떨어져서 여기저기 빌리러 다녔다 보니 올해는 봄부터 미리 준비해뒀다"고 토로했다.
올해 후원 줄어 취약계층 '고단'
하지만 이 같은 쪽방 주민들을 도우려는 기부 손길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날 주민들을 살피러 나온 서호노인복지관의 한 사회복지사는 "최근 기부금은 물론 연탄이나 생활용품 같은 후원도 감소하고 있다. 이번 겨울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 물품을 충분히 못 드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상청은 지난 17일 경기도 일부 지역을 포함한 전국 59곳에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한파주의보를 내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