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째인 1일 국민은 말을 잊고 나라는 온통 슬픔에 잠겼다. 생때같은 청년들이 떼죽음을 당한 참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서다. 공연장과 같은 특수한 공간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희생자를 애도하고 사고 수습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전부인 시간이다. 희생자에 대한 막말과 사고와 관련한 유언비어를 경계하고 차단하는 국민 공감대가 작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정치권도 사고 수습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일제히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정쟁으로 비칠 여지가 있는 일체의 대외활동을 중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는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해 사죄한다"며 공당의 책임을 표명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일체의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 대책에 전적으로 협조하기로 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께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집단적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초당적 연대이다.

하지만 좌시하기 힘든 불순한 동향들도 적지 않다. 국민적 슬픔을 개인적, 집단적 이익 실현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세력들이다. 국내외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현장 영상, 희생자 혐오, 각종 음모론으로 구독자 모으기 경쟁에 나섰다. 공적 영역에서도 방송사가 사고 관련 당국의 문제점에 대한 제보를 독려했고, 민주당의 한 여성 당직자는 SNS에 청와대 이전이 참사의 원인이라며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여론의 질타에 모두 철회했지만 참사 발생 하루만에 정권을 겨냥하고 나선 셈이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등 국가적 위기와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어김없이 분열됐다. 광우병 사태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음모설에 국민 전체가 농락당한 적도 있다. 온라인에서 유포된 가짜뉴스와 선동에 정치권이 편승해 정권 쟁탈전으로 판을 키우는 바람에 사건의 진실은 사라지고 희생자들의 명예는 훼손됐다.

이번에도 국민의 슬픔을 특정인과 세력에 대한 분노로 전환시켜 이익을 보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살피고 있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고의 원인보다 더욱 악질적인 무리들이다. 희생자와 유족은 물론 국민 전체를 우롱하는 가짜뉴스와 선동을 철저하게 잡도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