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찬바람에 겨울이 왔음(입동·立冬)이 느껴진 7일 오전 수원시 남수동 한 주택에선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장판을 들여놓는 새 단장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두 달 전 화재(9월1일 인터넷 보도=수원 다세대주택 화재 발생… 50대 1명 숨져)로 한 명이 숨진 '쪽방'이다.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10개 방이 5개씩 나눠 배치된 이곳엔 4명이 살고 있다. 9월 불은 왼쪽 방에서 났다. 방이 화재로 전소되자 왼쪽 편에 살던 주민 중 한 명은 오른쪽으로 옮겨왔다.
이들은 고작 두 달 전 이웃이 화재로 사망하는 참사를 생생히 목격했다. 그럼에도 쪽방을 떠난다는 건 선택지에 없다. 이곳 쪽방은 겨울이 오면서 벌써 입주 문의가 2차례나 올만큼 인기 거주지다.
겨울 다가오며 입주문의 이어져
"난방 안돼도 보증금 없고 저렴"
8개월을 이곳에서 거주한 문모(62)씨는 "여기는 보증금도 없고 월세만 25만원이라 좋다. 고시원보다는 여기가 낫다"고 말했고, 박모(62)씨도 "솔직히 난방도 안 되고 집 안에 화장실도 없지만 보증금이 없으니 계속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5년을 여기 쪽방에서 산 박씨는 한때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된 적도 있다. 그는 입주 서류를 준비하다 후두암에 걸리는 바람에 계약을 못했다. 이후론 쭉 이곳에서 지낸다. '쪽방 식구' 4명은 모두 거동이 불편하고 건강 이상이 있어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차디찬 겨울이 코앞이지만 난방은 언감생심. 보일러가 없으니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아 따뜻한 기운을 공급한다. 화재에 취약하지만 9㎡ 남짓한 이 공간에서 이들을 지켜주는 건 천장에 붙어 있는 화재경보기 뿐이다.
쪽방 집주인은 "여기가 보증금도 없고 그나마 싼 편이다. 취약계층 분들이 시내에서 이 정도의 공간을 마련하기는 힘들다. 새로 입주하고 싶어도 아직 수리가 안 끝나서 못 들어오는 사람이 2명 넘게 있었다"고 귀띔했다.
사람 살만한 환경인지도 살펴야
불과 수백만원 보증금 할 목돈이 없는 취약계층과 낡은 주택에 세를 놓는 임대인이 공존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공공의 개입이 필수다.
이강훈 주거권네트워크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공공임대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니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빈곤 비즈니스'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거 급여를 지급하되, 어떤 형태의 집에 거주하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월세 금액만 지원하는 걸 넘어, 사람이 최소한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인지까지 폭넓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