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인 대만인 왕모씨는 한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50대 여성이다. 왕씨의 부모도 대만인이지만 한국에서 거주했고 그간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왔다.

사실상 한국인인 왕씨는 약 3년 전부터 국민건강보험료 체납 문제를 겪고 있다. 장애가 있는 한국인의 경우 별도 심사를 거쳐 건강보험료를 경감하거나 면제해주지만, 6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F-5, F-6 비자 제외)에게는 지난 2019년부터 건강보험 지역 가입이 강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왕씨가 내야 할 건강보험료는 470여만원에 달한다.

왕씨는 고민이 깊어졌다. 건강보험료를 면제 받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그는 전자제품 조립 등 비정기적인 수입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어 생계 유지 능력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왕씨는 "단 한번도 한국을 떠나 본 적 없고 대만은 가본 적도 없다"며 "한 때 한국 국적 남성과 혼인했지만 상대의 잘못으로 이혼했고 이주여성쉼터에서 제공하는 식사와 옷 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부업으로 10만원씩 벌면 그 돈으로 주민세 등을 낸다"고 전했다.

인권단체들은 장애가 있는 외국인들에 한해 건강보험료를 경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기여성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오산이주여성쉼터 등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오영미 오산이주여성쉼터 원장은 "장애가 있는 비국적자는 정부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왕씨에게는 단순히 국적 취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귀화 과정에서 생계 유지 능력에 대한 완화된 해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왕씨를 대리하고 있는 재단법인 동천의 권영실 변호사는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의 생계 유지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국적 취득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짚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