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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원 정치부 기자
웃긴 상상을 했다. 짬뽕집에서 짬뽕을 먹고 있다. 대뜸 파리가 짬뽕에 앉았다. 다행히 양파 표면 그 어디쯤이다. 국물에서의 헤엄이 아닌 채소 위에 앉아 참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박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파리 한 놈이 국물에 빠졌다고 새 음식으로 바꿔줄 리 만무하다. 식당은 나와 같은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다. '짬뽕 한 그릇 단돈 20,000원'. 식당 앞에 내 걸린 현수막 글귀를 보고 다들 찾아왔을 테다. 동네에선 그나마 이 집이 점심 때우기 가장 좋은 곳이다. 임금은 바닥을 향했지만 물가는 천정을 향했다. 인간의 품삯은 끝을 모르게 추락했다. 봉급의 절반 이상이 식대로 나가니 노동자들 사이에선 '밥 먹으러 일터에 왔다'는 말이 더는 우스갯소리로 통하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었다. 배에 뭐라도 채우려 일터로 나섰고 다달이 새는 계좌를 메우려 땀을 흘렸다. 돈을 벌러 온 것인지, 쓰러 온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을 즈음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조선(朝鮮)이 되살아났구나. 끼니를 챙기려 양반집 몸종으로 살던, 기구한 역사 속 한 장면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했다. 역시 진리는 시대를 관통한다고 했던가.

'짠 테크', '하우스 푸어', '카 푸어'…. 짠테크는 구두쇠처럼 재물을 아껴 모으는 행위를 말하고 하우스푸어는 집을, 카푸어는 차를 얻느라 기꺼이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다. 경제의 먹구름은 그동안 우리 입에 오르내렸던 신조어란 비를 내려줬다. 변화에 들어맞지 않는 단어는 멸종한다. 수년 전 유행하던 'X발 비용'도 죽었다. 열 받을 때마다 마구잡이로 소비하다간 도태될 것 같으니 사람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같은 맥락에서 '소확행'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차라리 '대(大)확행'이 남았다. 물가와 환율, 이자가 모두 올라 3고(高) 시대다. 대다수가 더 힘들어졌다. 경제난에 탄생한 신조어들은 각자의 생존 방식을 반영한다. 잘 살고 싶단 인간 개인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정부라고 책임이 없을까. 제도권 내 비극은 정부의 무능이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