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AI) 방역 정책을 개선하려 지난해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질병관리등급제가 도입됐으나, 과도한 방역 수칙에 정작 닭을 돌볼 시간이 줄어들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질병관리등급제는 산란계 농가에 자율적인 방역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도입됐다. 질병관리등급제의 '가' 등급과 '나' 등급을 받은 농가는 인근 농가에서 AI가 발생해도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제도 도입 이전엔 AI 대유행 시기마다 무차별적 살처분이 이뤄져 공급부족으로 인한 계란값 폭등 사태가 불거졌었다.
이런 제도도 우수한 방역 조건을 갖추고 꼼꼼한 방역 작업을 수행하는 농장은 예방적 살처분에서 제외하지만 '제한적 방역' 중심이라는 점이 한계다.
가·나 등급땐 예방적 살처분 제외
철새 방지에 동물 친화 사육 외면
양계농가들은 AI 방역 정책이 현장과 괴리가 있어 "닭을 기를 시간이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화성시 산안농장의 이경묵 씨는 "제도 자체가 밀폐, 격리, 분리로만 진행되다 보니 오래전에 지어진 농장은 방역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며 "방역 작업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방역에 초점을 과하게 두다 보니 닭의 상태를 살피는 등 사육에 들이는 시간 자체는 줄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네덜란드에서는 방역 시스템을 구축할 때 산, 바람 같은 지형적 조건과 철새 이동 경로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며 "제한적인 방역을 넘어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개별 농가에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권을 존중하며 방사 형태로 사육하는 농장은 사육 조건이 정부의 AI 방역 정책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긴다. 감염병 확산과 예방 조치 차원에서 실시하는 방역 정책은 철새가 전파하는 바이러스를 막으려 햇빛과 바람 같은 조건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김현지 실장은 "철새를 AI의 원인으로만 분석하면 되레 모든 환경적 조건을 차단한 공장식 축산이 방역의 해법인 양 된다. 오히려 공장식 밀집 사육은 닭의 면역력을 낮춘다"며 "차단 위주의 방역 정책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