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 추위가 몰아닥친 지난 23일 오전 7시 30분. 막 동이 튼 성남 판교역 앞 버스정류장에선 40명 가량 시민들이 한파를 견디며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지 않는 빨간 광역버스 대신 45인승 버스 한대가 정차했다. 노선번호도 행선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긴 줄로 늘어선 광역버스 대기 행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시민 서넛이 기다렸다는 듯 버스에 승차했다.
탑승한 버스 안엔 두 자리를 홀로 차지한 채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승객이 보였다. 입석 금지 전 콩나물 시루 같았고 입석 금지 후엔 늘 만석이었던 광역버스와 대비됐다. 버스는 1시간을 달려 오후 8시 40분께 여의도역 부근에 정차했다.
예약한 승객만 태우는 '공유형 버스'였다. 도내 광역버스 입석금지로 출퇴근 대란(12월19일자 7면 보도=광역버스 입석금지 한달… 40분 기다리기 예사, 지각 출근은 일상)이 이어지면서 대안 교통 수단이 주목 받고 있다. 이 같은 공유버스 업체들은 주로 출퇴근 시간 특정 지역 인원 수요가 충족되면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버스를 배차한다. 이용자들은 월 이용료를 납부하고 원하는 지역에서 탑승 가능한 공유버스를 조회한 뒤 예약하고 이용한다.
앱 예약전용… 누적 승객 8만명
월이용료 납부… 노선번호 없어
전세버스 아닌 '통신중개업' 영업
입석 금지 때문에 타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언제 탈지 모르고 추위 속에 떨 필요도 없다. 이날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운행한 공유형 버스는 오전 6시 50분부터 8시 40분까지 24개 정류장에 정차했고 승객 30명 가량을 태웠다.
필요한 정류장에서 예약된 승객만 태우고 이동하니 불특정 다수 승객이 이용하는 광역버스보다 효율성이 높다. 해당 공유형 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M업체는 지난해까지 수도권 각지에서 출발하는 200여개 공유버스 노선을 운영하며 누적 이용객 8만명을 기록했다.
일종의 전세버스인 셈인데 예약을 할 때 여행업체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활용한다는 게 차이다. 매일 서울행 출근길에 고통받는 수도권 주민들의 호응이 크지만 제도권에 정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렌터카 서비스를 표방한 '타다'가 여객법 위반 혐의 논란을 일으키며 영업이 어려워진 사례가 있다.
M업체는 '전세버스업'이 아니라 '통신중개업'으로 영업한다.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로 통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제도권이 제공하는 교통수단이 미비한 틈 사이에 '공유형 버스'가 탈법과 혁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운행을 이어가고 있다. → 관련기사 7면(혁신인가, 불법인가… '모빌리티 플랫폼' 숨통은 언제)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