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의결된 가운데, 합의를 이끌어낸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활동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김 의장은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실과 직접 접촉해 준예산의 위험성 등을 설명하며 중재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김 의장의 '합의처리' 소신이 원내를 원만히 정리해냈다는 호평 한편에서는 원내 공식적 토론 한번 없이 감세 합의로 이끌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김 의장은 3차례 중재안과 3차례 본회의 시한을 제시하며 여야 합의 타결을 촉구해왔다.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이었던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으로 인해 여야 대치가 격해지자 본회의를 열지 않았고, 민주당이 정기회 마지막날(9일) 단독 감액 수정안을 의장에게 제출하며 본회의 개의를 촉구했을 때도 협상을 종용하며 본회의장 빗장을 풀지 않았다.
이미 여야에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및 2년 유예안' 등을 1차 중재안으로 제시했던 김 의장은 여야가 최종 이견을 좁히지 않자 '법인세 최고세율 1%p 인하, 지난 15일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은 예비비로 지출'하는 2차 중재안을 제시하며 1차 데드라인(15일)을 제시했다.
여야의 경제운용에 대한 견해차이가 워낙 커 협상이 챗바퀴를 도는 상황에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민주당이 먼저 수용했다.
하지만 당시 담판은 대통령실이 걷어찼다는 게 중론이다. 15일 오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중재안에 '보류'를 말하더니 이튿날 대통령실은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브리핑을 내 놨다.
그날(16일) 오후 김 의장 역시 양당 원내대표를 불러 회동을 갖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호통을 쳤다. 2차 데드라인이 19일로 제시됐다.
이마저도 어그러지면서 김 의장은 행안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명목 예산으로 하고 금액을 50%씩 감액하는 내용의 3차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여야 합의가 목전에 오자 김 의장은 21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전화해 "예산안 합의의 시급성, 준예산 위험성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라"고 경고성 당부를 전했다. 더불어 이날 언론과 양당에 23일 본회의 개최를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실에 대한 압박으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김 의장은 최종 합의안이 도출되자 직접 정부 설득에 나섰다. 22일 오전에는 한덕수 총리에게 전화해 합의안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다.
애당초 추경호 부총리와는 김 의장이 기획재정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을 고리로 끊임없이 소통해 온 터였다.
이렇게 해서 23일 본회의를 열고 차수 변경하며 예산안 심의를 크리스마스 전 '여야 합의'로 마무리 한 데는 김진표 의장의 '합의처리'에 대한 소신이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같은 김 의장의 소신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각종 '감세'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기자회견장에서도, 본회의 장에서도 빗발쳤다.
여야가 '감세'에 대한 입장이 상반됐는데,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양당이 밀실에서 한발 씩 물린 안이 '합의안'으로 등장하다 보니 정체성 불분명한 '숫자 조정'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본회의가 예정됐던 23일, 민주당 안민석(오산)·김용민(남양주병)·문정복(시흥갑)·양이원영·박주민·강민정·이수진(동작)·정필모·최강욱·최혜영·황운하,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예산안 합의로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기 위한 민주당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며 "위법한 시행령 예산(경찰국, 인사정보관리단)과 부자감세에 합의함으로써 원칙과 명분도 잃었다. 이번 예산안 합의는 정부의 잘못을 견제하고 바로잡는 야당의 역할을 포기한 잘못된 합의"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는 "법인세를 1%p씩 모든 구간에서 세율을 낮춘다고 모두가 공평한 혜택을 누리지 않는다. 대기업과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일수록 더 큰 혜택을 가져간다. 홍길동도 아니고, 이것을 부자감세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이 부자감세이겠느냐"며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를 반드시 막겠다던 민주당이 법인세 인하를 합의한 것을 저와 정의당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예산안 심의에 깊이 참여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장이 최대한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중재한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국회의장은 본회의 개의여부를 쥐고 있다. 만일 12월 31일까지 합의가 안되는 것을 놔뒀다면 우리 뜻대로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김 의장이 본회의를 열지 않고 합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권순정기자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