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로 피는 꽃이 다르듯 사람마다 전성기를 맞는 시기도 다르다. 이른 나이에 전성기를 맞는 사람이 있고, 늦은 나이에 전성기를 맞는 사람도 있다. 74세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씨는 이듬해인 2022년 외신이 선정한 최고의 드라마 '파친코' 등에 출연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50세 이전까지 미국프로골프챔피언스(PGA) 우승 단 한 차례도 없이 두각을 내지 못하던 스티븐 알커(51)는 50세 이상 선수만 뛰는 PGA에서 2022년 시즌 상금왕에 올라 화제가 됐다. 느지막한 나이에 성공을 이룬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日, 세계최고 전자제품 우리에게 밀려 사라져
반도체 2030년 글로벌시장 점유율 '0%' 예측
'나일강에 꽃피운 이집트 문명'이라는 표현처럼 국가나 문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를 이루었을 때 '꽃폈다'는 표현을 쓴다. 역사 속 찬란했던 세계 문명은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번성한 시기가 있다면 반드시 쇠하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경기침체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첨단 IT시대에 일본의 정부기관, 기업, 가정에서는 아직도 팩스로 서류를 주고받고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관한다. 간단한 등록 절차에도 자필로 쓴 수십 장의 서류에 도장을 요구한다. 전화 한 통이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인데도 이메일보다 우편을, 우편보다 직접 방문하는 업무를 선호한다고 한다.
일본이 1980년대에 갇혀 사는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관료들과 세계 1등 기업이라는 자만에 빠진 경영진들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폰(스마트폰)이 등장할 때도 피처폰(스마트보다 성능이 낮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휴대전화) 개발에 집중했던 게 일본 기업이다. 세계 최고라고 하던 일본의 전자제품 중 상당수가 한국 제품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사라졌다. 일본 경제산업청은 2030년 일본의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0%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1988년 일본의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3%였다. 40여년 만에 세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 대기업들이 나섰다. 도요타, 소니, NTT, 소프트뱅크 등 대기업 8곳이 차세대 반도체 합작회사를 설립해 경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가 지금도 세계 3위인 이유는 기업들이 보유한 원천기술 덕분이다. 일본 기업의 원천기술과 자본이 힘을 모으면 중국에 내준 세계 경제 2위 자리를 얼마든지 되찾을 수도 있다.
대기업들 심각성 인식 합작회사 재도약 준비
'전성기라는 꽃' 실력 갖춰 놓아야 피울 기회
전성기라는 꽃은 운만으로 피는 게 아니다. 실력을 갖춰 놓아야 기회가 오더라도 잡을 수 있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면 물이 흘러내려 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노를 저어야 한다. 일본 사례를 보더라도 세계 1등 기업이 되는 것만큼이나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없으면 1등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얘기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초조해 할 것도 없다.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삶이 혹독한 겨울처럼 느껴져도 절망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올해 '행복꽃'과 '건강꽃'이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