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수석에 앉아 기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취재를 위한 인터뷰는 진작 끝났다. 정치·사회·문화로 주제를 바꿔가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주에서 안산으로 이동할 때쯤 대화 소재는 거의 고갈됐다. 말수는 줄어들고, 피곤이 몰려왔다. 창문을 여닫는 일이 잦아졌다. '눈꺼풀이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고 너스레를 떨며 애써 졸음을 쫓아냈다.
운전석의 기사는 이런 피곤함에 적응돼 괜찮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14시간째 접어든 장시간 운행은 그에게도 벅찼다.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지압봉으로 허벅지 등을 누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하루 종일 조수석에 앉아만 있던 나를 말이다.
기자로서, 동행 또는 체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아는 체'하는 걸 경계한다.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당사자가 된 것처럼 기사를 쓰는 건 기만처럼 느껴진다. 운전석의 기사, 조수석의 기자. 안산에 도착해 차량 안에서 잠을 청하는 기사, 안산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기자. 기자는 당사자를 모두 이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기사는 헤어지며 자신이 귀족노조처럼 보이느냐고 물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퀭한 눈에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와 작별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우연히도 택시 기사는 작년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5월 퇴직한 이후 컨테이너 화물 기사를 하려고 실제 기사들과 1주일간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잠도 못 자고 300만~400만원 버는 사람들이 귀족이요?"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